어부들의 메뉴, '치오피노'가 생각나는 밤

샌프란시스코의 대표 메뉴, 내겐 카멜 생각나게 해

by 김수정
풍경보다 기억에 남는 맛이 있다.
카멜에선 치오피노가 내게 그랬다.
여행에서 음식이 중요한 이유다.

‘카멜 바이 더 씨(Carmel by the Sea)’, 사람들은 이곳을 보통 ‘카멜’이라고 부른다. 카멜은 우리가 지낸 실리콘밸리의 남쪽에 위치한 동화 같이 예쁜 마을이다. 주민의 상당수가 화가, 시인, 극작가 등 예술가라는 이곳은 그래서인지 마을 전체가 우아한 갤러리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은 빅스비 브리지(Bixby Bridge), 17 마일 드라이브(17 Mile drive), 페블 비치(Pebble beach) 등과 함께 여행하는 관광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아름다운 경치을 모두 보고도 그 풍경보다 더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치오피노(Cioppino)라고 불리는 해산물 스튜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 음식을 샌프란시스코의 메뉴로 기억하겠지만, 우리에겐 카멜의 메뉴로 남아있다. 맛있는 음식은 유명 관광지보다 더 강렬한 느낌으로 기억에 남는 법이다.


치오피노는 게, 새우, 홍합, 오징어, 흰 살 생선 등을 토마토, 화이트 와인 등과 함께 끓여 만든 이탈리아식 해물 스튜로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다.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 만들기 시작한 메뉴라고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요리지만 이탈리아엔 없고, 샌프란시스코에는 있단다.


미국에서의 일정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주말 아침 우리는 카멜로 향했다. 오전에 빅스비 브리지를 보고 온 터라 카멜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좀 지난 뒤였다. 일단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맛집을 검색해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냥 마을을 둘러보다 발길 닿는 식당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여행 가기 전 맛집을 찾아보지 않는다. 나는 원래 여행 준비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또한 남편은 네이버 맛집 리뷰보다 현지에서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 앱을 켜고 식당 검색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미국에서는 트립어드바이저 대신 옐프(Yelp)라는 앱을 주로 이용했다. 여기 사람들도 주로 이 앱을 쓴다고 했다.


플래허티스의 이 상들 때문에 이 식당을 선택하게 됐다.

카멜에서 플래허티스(Flaherty’s)가 눈에 띈 건 우연이었다. 마침 손님을 찾는 직원이 식당 앞에 서 있었고, 사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호객행위에 넘어가지 않으려는데, 식당 창가로 보이는 많은 상들이 우리를 잡아끌었다. 마침 문에는 우리가 신뢰하는 트립어드바이저 2018년 맛집 스티커까지 붙어있다. 허기진 우리는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오! 치오피노가 있네! 우리 이거 시키자.”

남편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몇 해 전 미국 출장 때 먹고 너무 맛있어서 집에 돌아와 내게 해 준 요리인데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어렴풋이 기억난다. 맛은 있았던 것 같은데 사실 그때 내겐 그 음식이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겐 피시 칩스를 주문해줬다. 그래도 미국에서 처음 먹는 피시 앤 칩스다. 갓 튀긴 생선 튀김과 감자칩 맛을 보니 일단 합격점이다. 사실 튀긴 음식이 맛없기가 더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치오피노도 맛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한껏 마음이 설렌다. 함께 나온 빵은 치오피노에 찍어 먹으려 아껴뒀다. 혹이 양이 적을까 싶어 빠에야도 추가했다.

치오피노. 먹기 바빠서 사진을 공들여 찍지 못했지만 사진보다 훨씬 맛이 좋다.

드디어 치오피노가 나왔다. 사실 해산물과 토마토, 이 둘은 같이 넣고 끓여 간만 해도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기대에 찬 표정으로 한입 먹어봤다. 오! 역시 맛이 아주 좋다. 우리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음식을 즐겼다.


음식이 3분의 1도 채 남지 않았을 즈음 음식에서 나사 하나가 발견됐다. 오 맙소사! 한참 좋았는데 말이다. 근처에 있던 직원을 불러 음식에서 나사가 나왔다고 말하자 당황해하며 나사와 함께 남은 음식을 갖고 돌아간 뒤 별 이야기가 없다. 한참을 기다려도 대응이 없자 담당 서버를 다시 불렀다. 잠시 뒤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미안하다며 추가로 다른 음식을 더 갖다 주겠다고 했다. 우린 빠에야까지 먹어서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 됐다고 말했다.


결국 식당은 치오피노 값을 받지 않았다. 식당을 나서는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인생의 첫 오리지널 치오피노에 오점을 남긴 나사가 못내 야속했다. 그래서인지 치오피노가 내 머리에 더 각인된 느낌도 있다. 하지만 속상했던 마음은 식당에 두고 나오기로 했다. 남은 여행 일정을 위해.


우린 느긋하게 동화 속의 마을을 구경하듯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녔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마을처럼 예쁜 기념품을 구경하고, 갤러리의 그림을 보기도 했다. 카멜을 둘러본 뒤 우리는 남들 다 가는 17마일 드라이브, 페블 비치 등을 차례로 돌았다. 두 아이가 모두 잠이 들어서 교대로 한 명씩 경치를 봐야 했지만 이곳의 경치가 빼어난 것만은 분명했다.


미국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지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는 치오피노가 만들고 싶어 졌다. 출장을 다녀온 남편이 내게 치오피노를 해준 것처럼 말이다. 음식 준비를 하며 나는 무척이나 설레었다. 음식은 우리의 여행을 추억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였다. 토마토소스의 양 조절 실패로 오리지널의 맛을 구현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추억쯤은 소환하는 맛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미국 여행 이야기를 하며 치오피노를 먹었다. 그러니 문득 우리의 여행이 더욱 그리워졌다.

2019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만든 치오피노. 우리의 여행이 더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카멜을 둘러볼 때 함께 가면 좋은 관광지

- 빅스비 브리지 : 캘리포니아 1번 도로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다. 인스타 사진 찍기 딱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 17 마일 드라이브 : 총 17마일 정도의 드라이브 코스로 그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수세기 동안 바윗돌에 붙어서 혼자 자라고 있는 론 사이프러스(Lone Cypress)가 인기다. 혼자 서 있는 나무와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 페블 비치 : 페블 비치가 아름다운 만큼 비치와 맞닿은 골프 코트도 아주 유명하다. 페블 비치 골프 코스는 1919년 개장해 100년 간 운영돼 온 곳으로 미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싼 골프장 중 하나다.


- 몬터레이 베이 수족관 :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 시에 위치한 수족관으로 조지아 수족관 못지않게 큰 규모를 자랑한다. 620종 3만 5천여 마리의 수중 생물을 볼 수 있어 아이들이 있는 관관객에게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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