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정 몰랐다. 미식축구 경기가 있는 날, 경기장 근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미식축구와 프로야구 경기 관람!’ 미국에 있는 동안의 남편 목표 중 하나였다. 누가 보면 남편이 운동광인가 싶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나와 남편은 월드컵, 올림픽 등의 전 세계적 행사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미국에서는 미식축구와 프로야구만은 꼭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식축구 경기의 규칙도 모르고, 프로야구 경기에 류현진 선수가 나오지 않을지언정. 그는 다만 여기 사람들이 즐기는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고 했다.
근처 리바이스 스테이디움에서 8월 30일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San Francisco 49ers)’와 ‘로스앤젤레스 차저스(Los Angeles Chargers)’의 경기를 놓치면 미국에 있는 동안 미식축구를 보긴 힘들 거라며 남편은 이날 경기를 일찍부터 예약해뒀다. 누가 누구와 경기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누가 해도 우리에겐 마찬가지니까.
경기 시간은 오후 8시. 오후 6시쯤 슬슬 경기장으로 출발하려고 차에 올라탔는데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지금 리바이스 경기장 근처가 아주 난리도 아니라며 경기장까지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경기장 몇 블록 전부터 차량이 통제돼 차가 아예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곳은 이미 주차 자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식축구 경기가 있는 날 경기장 주변 교통이 통제된다는 걸 우린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알았다. 미국인들은 경기가 있는 날마다 이런 교통 통제로 인한 불편함과 주차 지옥을 감수하면서 미식축구를 즐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경기장에 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1. 가능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서 주차를 하고 걸어가는 방법. 이 방법은 주차 자리를 찾지 못하면 대략 낭패다. 2. 남편이 우리를 근처에 데려다주고 자신은 호텔에 차를 갖다 놓은 뒤 뛰어오는 방법.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경기장 근처에서 기다리는 것도 문제고 남편이 호텔에서 경기장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다. 3. 우버를 타고 근처까지 가는 법. 미국에서는 카시트를 안 하면 아이와 차를 탈 수 없는 줄 알고 우버는 포기했다.
나는 호텔에 방법을 물어보자고 했다. 주저하다 남편이 호텔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손짓한다.
마침 호텔 로비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브랜든이 있었다. 그는 이 호텔에서 가장 친절한 직원이다. 남편은 “우리는 오늘 리바이스 경기장에서 열리는 미식축구를 보러 갈 거다. 근데 근처 도로는 다 교통이 통제가 된 상태다. 방법이 없을까?” 하고 물었고 그는 흔쾌히 자신이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미식축구를 보러 간다는 말에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정말 좋은 시간이 될 거라고 했다.
미식축구 경기가 있는 날엔 경기장 주변 도로가 통제된다는 걸 우린 그날 아.
그러면서 그는 미식축구가 경기가 있는 날은 이렇게 교통을 통제한다며 차로는 경기장까지 못 가니 대중교통을 타야 한다고 했다. 호텔에서 가까운 역에 데려다줄 테니 거기서 전철을 타고 경기장이 있는 역에서 내리면 된다는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 나오면 사람이 많아서 복잡하니 30분 정도 먼저 나와서 지금 태워준 역에 와서 자신에게 전화를 하면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태워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웠다. 집에 올 때는 알아서 올 테니 걱정 말라고 말 한 뒤 전철역으로 향했다. 브랜든 덕분에 우리는 산호세에 와서 전철도 타보게 됐다. 둘째 아이는 무료라 표 3장을 끊었다. 아이 둘은 전철을 타는 것부터 이미 기분이 한껏 좋아져 있다. 전철에 올라타자 샌프란시스코 팀 유니폼인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정거장에 설 때마다 빨간 옷을 입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빨간 옷을 입고 올 걸.
리바이스 스테이디움에 가기 위해 끊은 전철표. 둘째 아이는 무료인데 마침 표와 비슷한 영수증이 있어 그걸 줬더니 표인 줄 안다.
경기장이 있는 역의 이름은 그 이름도 찬란한 '그레이트 아메리카(Great America)'. 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쏟아져 내린다. 역 앞에는 경찰들이 서 있다. 둘째 아이가 경찰 아저씨에게 수줍게 인사를 하자 경찰 아저씨도 아이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넨다.
경기장 입구로 빨려 들어갔다. 온통 빨간 옷을 입을 사람들 속에 섞이니 우리 가족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팬이 된 기분이다. 우리는 사실 경기보다는 사람 구경에 더 신이 났다. 그렇게 중요한 경기는 아닌지, 빈 좌석이 많다. 경기가 시작돼도 경기를 보는 사람 반, 돌아다니는 사람 반이다. 동네 축제가 열린 듯한 분위기라 우리의 마음도 축제를 즐기는 기분이 됐다.뭐랄까, 지극히 미국적 임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랄까?
아무것도 모르고 봤지만 경기는 재밌었다. 왜 미국인들이 미식축구에 열광하는지 어렴풋이 알겠는 느낌이다.
처음 보는 미식축구 경기. 룰도 선수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경기는 재밌었다. 수비와 공격을 주고받고 몸싸움이 이어졌다. 경기 흐름이 짧고 중간에 이벤트도 많았다. TV로만 보던 치어리딩도 흥미롭다. 재밌는 건, 선수 이름 하나 부르지 않고 경기를 시작하더니 치어리딩을 하는 동안엔 치어리더의 이름을 다 불러주더란 거다.
우리는 경기를 충분히 즐기고 경기가 다 끝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친절한 브랜든 덕분에 편하게 와서 집에 가는 것도 쉬울 거라 생각했다. 카시트 없이도 아이와 우버를 탈 수 있다기에 우버를 타고 호텔로 들어올 생각이었다. 다시 브랜든의 신세를 질 수는 없지!
경기가 끝낙도 여전히 교통이 통제된 상태다. 다들 집에는 전철을 타고 가는 건가?
그런데 도로가 전부 막힌 상황이라 근처에 차가 들어오지 않는 걸 간과했다. 한 정거장만 걸으면 되겠지 싶어 아이 둘을 데리고 한 정거장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여기도 차가 못 다니긴 마찬가지. 그렇게 세 정거장을 걷고 나서야 차가 다니는 도로가 나왔다. 이제야 우버를 잡을 수 있게 됐으나 눈 앞에 전철이 보인다. 전철을 타고 호텔에 가까이 가면 우버 비용도 싸지겠지 싶어 일단 전철표를 끊었다. (이럴 거면 진작 전철을 탈 걸 왜 걸은 걸까.)
표를 끊고 보니 전철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거다. ‘아, 그냥 우버 탈 걸’ 싶지만 끊어 놓은 전철표가 아까워 일단 한참을 기다려 전철에 올랐다. 내려서 어차피 우버를 타야 하니 최대한 가까이 가서 내리기로 했다. 내리고 나니 브랜든이 내려준 정거장에서 하나 더 와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우버를 잡아타고 호텔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호텔 정문으로 들어서는데, 호텔 차에서 내리는 브랜든이 보인다. 반갑게 인사하자 브랜든이 어떻게 왔냐며 걱정돼서 그 정거장에서 한참 우리를 기다렸다고 했다. 아이까지 있는 우리 가족이 혹시라도 집에 돌아오기 힘들까 봐 전화를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길래 혹시 몰라 전철역에서 우릴 기다렸다는 거다. 아! 이렇게 미안할 때가!
우릴 기다릴 거라곤 정말 생각도 못했다. 우린 또 부탁하는 게 미안해서 우버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하게 돌아왔으면 됐다며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타지에서 누군가 우리의 안위를 걱정해줬다는 것이 어찌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나는 몇 번이나 더 미안한다는 말을 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경기장을 빠져나온 게 오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방에 와보니 12시가 다 됐다. 차로 오면 15분이면 충분할 거리였는데 말이다. 남편은 미안해했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그날 이후 우린 브랜든과 더 가까워졌고, 처음 본 미식축구 경기는 무척 흥미로웠으며, 돌아오는 길조차 우린 즐거웠다(물론 아이들이 좀 힘들어하긴 했지만).돌이켜보면 경기보다 돌아오는 길이 더 기억에 남은 걸 보면 분명 그날의 우리에겐 그조차 값진 시간이었다.
아! 그리고 이날 경기는 샌프란시스코가 로스엔젤리스에 24대 27로 졌음을 다음날 알게 됐다. 경기 결과는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