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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Mar 05. 2020

엄마는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하셨어

좋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

“공무원 시험을 보는 건 어떠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엄마는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로를 고민하고 있거나, 일을 잠깐 쉬고 있을 때, 아이가 좀 커서 이제 살 만하다 싶을 때도 엄마는 내게 공무원 시험 얘길 꺼내셨다. 엄마의 근거는 대략 이렇다. 요즘 시대에 여자가 직업은 있어야 한다는 것과,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되고 안정적이며, 육아휴직도 눈치 안 보고 3년은  수 있으니 아이 키우기 좋은 직업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일을 그만둔 딸이 집에만 있는 게 속상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내가 공무원 시험을 치기만 하면 덜컥 붙을 거라 생각하시나 보다. “엄마, 미안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다 내려놓고 시험공부만 해도 붙을까 말까 하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난 공무원이 될 생각이 없어."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엄마는 딸인 내가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TV 홈쇼핑을 보다 말고 “너도 쇼호스트 하면 잘할 텐데” 라든가, 저녁 뉴스를 보면서 “너는 방송기자도 잘할 것 같은데” 같은 얘길 그렇게 쉽게 하실 리가 없다. 그런 얘기 중 아이 둘을 낳은 지금까지 꾸준히 하시는 게 바로 공무원이다. 충청도 시골 마을에 사시는 엄마가 보기에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딸에게 권하고 싶을 만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엄마가 처음 공무원 얘길 꺼내신 건 수능이 끝난 뒤 학교 입학 원서를 쓸 때였다. 이미 두 살 터울 언니는 엄마의 권유대로 교대에 다니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한 곳은 내가 쓰고 싶은 언론정보학과(입학할 때는 사회계열로 입학해 전공을 언론정보학을 할 생각이었음)를 써도 좋으니 다른 한 곳은 교대, 또 다른 한 곳은 행정학과를 써보라고 하셨다. 점수는 교대 > 행정학과 > 언론정보학과 순이었다. 일단 교대는 떨어졌다. 행정학과와 언론정보학과에 붙었는데 나는 주저 없이 언론정보학과를 선택했다. 물론 엄마는 내 결정은 존중하셨다.


대학교 4학년, 여기저기 원서를 냈고 참 많이도 떨어졌다. 그런 내게 엄마는 다시 공무원 얘길 꺼내셨다. “요즘 취업하기도 힘든데, 공무원 시험을 보는 건 어때? 공부하는 동안은 엄마가 도와줄게” 그 전까지만 해도 졸업하면 금전적으로는 독립하는 거라고 말하시던 엄마셨다.


“아니 뭔 공무원 시험이야~ 그게 취업보다 더 힘들어! 그리고 공무원 시험 볼 거였음 내가 그때 행정학과를 갔지.”


첫 번째 회사를 그만뒀을 때도 그러셨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자 또 그 얘기다. 나는 다시 힘주어 얘기했다. “엄마, 나는 공무원이랑 안 맞아” 우리 엄마는 다행히도 살짝 얘기는 꺼내도 강권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다행이다.


공무원 될 사람이 정해져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나랑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진득이 앉아서 언제 붙을지 모를 시험을 준비하고 싶지가 않다. 안정 지향적인 사람이 아닐 뿐 더라 평생 묵묵히 한 길을 걸어갈 생각도 없다. 한 분야에 깊게  빠지지는 못해도 오만 것에 관심이 고, 정해진 일을 하는 것보단 찾아 하는 일이 좋고, 앉아 있는 것보단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좋다. 물론 내 생각과 다른 일을 하는 공무원도 있겠지만 나는 의지가 없어 그런 일의 공무원이 있는지 찾아볼 생각이 없다. 확실한 건 나는 그것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란 것이다.

출처 : https://www.freepik.com/

얼마 전 고3이던 사촌동생이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는 얘길 들었다. 누군 잘 생각했다고 했고, 누군가는 아깝다 했다. 그도 성인이 됐으니 분명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일 것이므로 존중한다. 다만 시기가 꼭 지금이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 여태 주어진 공부만 하다 이제야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것을 위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됐는데 스스로 그것을 놓아버린 것 같아서다. 물론 공무원이 되고도 그럴 수 있겠지만, 스무 살의 경험과 서른 살의 경험은 여러 면에서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공무원,  좋은 직업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꼭 필요한 일이며  많은 사회 구조를 지탱하고 있다. 그들로 인해 정부가 운영되고 시민들의 일상이 돌아간다. 엄마가 내게 공무원을 권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인 안정성과 정년 보장 역시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인정한다. 다만 나는 모두가 그 한길을 향해 달려가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 젊은이들에게 탐색의 기회와 실패의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세상이 안타깝다. 그 좁은 길을 향해 나까지 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난임휴가와 육아휴직을 모두 쓴 언니가 복직했다. “언니, 선생님은 여자 직업으로 참 좋아. 육아휴직도 법대로 쓰고, 방학도 있고, 다른 직장과 비교하면 야근도 안 하고, 정년도 보장되고 말이야” 나 역시 '여자 직업 공무원'이라는 말에 편견을 가득 담고 있었나 보다.  언니는 그런 내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게 여성인 선생님에게 얼마나 큰 족쇄인 줄 알아? 정년이 보장되니 쉽게 그만두지도 못하고, 야근 없고 방학 있다는 이유로 아이를 돌보는 것도 다 엄마 몫이 된다고! 방학이면 쉬면서 돈 번다는 소리나 하고 있고 말이야! 좋긴 뭐가 좋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작 당사자에겐 가장 큰 단점이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 생각이 짧았다. 그렇다면 나는 더더욱 공무원이 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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