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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Apr 02. 2020

여자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

밤이고 낮이고 박서준에 미쳐 있던 일주일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래서 시작을 안 하려고 한 건데. 이미 되돌릴 수 없다. 드라마는 시작됐고 하루 종일 박서준 얼굴이 눈앞에 아른 거른다. 밤에는 잠도 못 자고 박서준 생각만 하고 있다. 하다하다 이제는 박서준으로 글을 쓰고 있다니 진짜 미쳤나 보다.     


나는 그의 서글서글한 눈이 좋다. 착하게 생겼다. 이마도 좋고, 매력적인 입술도 좋다. 내린 머리도 좋고, 올린 머리도 좋다.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어도 멋있고, 슈트를 입으면 아주 끝내 준다. 그의 큰 키도 좋고 넓은 어깨도 좋다. 차근히 작은 역부터 쌓아 올라온 그의 필모그래피도 좋다. 그냥 그런 드라마를 인생 드라마로 완성하는 그의 연기력은 더욱 좋다. 아주 그냥 다 좋다.     


애정하는 박서준 (출처 : http://www.awesomeent.co.kr/)

우리 집엔 TV가 없다. 그래서 2년이 넘도록 드라마 하나 볼까 말까 하다. 가끔 화제가 되는 검증된 드라마가 있으면 드라마가 끝난 뒤 몰아보는 편이다. 그래 봤자 근 10년 동안 본 드라마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런 내가 가장 최근에 본 드라마도 박서준이 나온 <김비서가 왜 이럴까>였다.     


그의 드라마는 2개쯤 봤다. 소처럼 일한다고 해서 ‘박소준’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작품을 다 보지도 않고 무슨 팬이라고 할 수 있냐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팬이 별거냐! 좋아하면 팬이지! 그리고 난 진짜 배우 중엔 몇 년간 박서준만 좋단 말이다(<태양의 후예> 송중기는 열외지 말입니다). 그는 꾸준히 나의 원픽이었다.     


나는 잔상이 오래 남는 사람이다. 그래서 공포영화나 스릴러 영화, 잔인한 영화는 못 본다. 원래는 안 그랬는데 점점 간이 콩알만 해지더니 무섭고 잔인한 장면 때문에 잠을 설치는 날이 늘면서 이제 그런 영화는 안 보기로 했다. 여태 <부산행>도 못 봤다. 근데 이런 잔상은 무서운 영화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다. 맘 설레게 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그렇게 오래 생각이 난다. 영화 줄거리는 잘도 잊으면서 그런 특정 장면은 참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요즘 내 일상은 무료했다. 영 낙이 없는 거다. 애들 밥을 해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놀아주는 게 아무리 보람찬 일인들 한 달 내내 이러고 있는 건 전혀 보람차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지루함에 몸부림을 쳤다. 활력 없는 일상에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박서준을 구글링 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이 나온다^^

그래서 아껴 뒀던 드라마를 보기로 했다. 건빵 속 별사탕 숨겨두듯 아껴둔 거였다. 나의 원픽 박서준이 나오는 2017년 드라마 <쌈 마이웨이>. 나는 밤마다 아이들을 재운 뒤 슬그머니 기어 나와 소리를 낮추고 박서준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내가 박서준을 좋아하는 건지 드라마 속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나도 분간이 잘 안 가지만 그 캐릭터를 그렇게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박서준을 좋아하는 게 맞지 싶다.     


문제는 드라마를 보느라 늦잠을 잔다는 것이다. 처음엔 하나만 보고 자야지 하고 시작하는데 한국드라마는 한 편만 보고 끝낼 수 없게 참 잘도 만든다. 두세 편을 보면 벌써 새벽 2시가 가까워온다. 잠자리에 누워서 설레는 마음으로 박서준을 검색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더 늦게 자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억지 잠을 청하면 다음날 아침엔 당최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늦잠을 잔 데다 아이들도 집에 있으니 그 다음 날은 피곤함이 턱밑까지 내려와 골골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고도 또 밤이 되면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린다. 나는 박서준을 만나러 가야 하니까. 이렇게 박서준에 미쳐서 며칠을 보냈다. 완결이 됐으니 망정이지 지금 방송되는 드라마였다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몇 달간 박서준 생각만 했을 거다. 한창 인기 있는 <이태원 클래스>를 정주행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KBS 드라마 <쌈 마이웨이>


그렇다고 아이도 둘이나 있는 내가 박서준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 아니다. 유부녀가 외간 남자보고 설레는 건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그렇게 적절한 그림은 아니다. 그러니 연예인을 보면서라도 설렘을 느껴야 겠다. 불륜 따위로 이어질 확률 제로다. 얼마나 안전한가! 결혼한 여자들이 왜 그렇게 드라마를 보나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같은 논리도 걸그룹을 좋아하는 삼촌팬의 순정 또한 존중한다.     


‘안 본 눈 삽니다’라는 말이 있다. 남편은 나보고 “아직 <스타워즈> 시리즈를 안 봐서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스타워즈는 됐고, 아직 박서준의 드라마를 다 보지 않아서 정말 좋다. 아직 더 설렐 수 있으니 말이다. 변태 같지만 앞으로도 그의 드라마는 서랍 속에 숨겨둔 초콜릿을 꺼내 먹듯 아껴서 볼 거다.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지금은 끝내 주는 연기력도 인정받는 배우(디카프리오는 얼굴에 가려진 연기력을 인정받고자 일부러 얼굴을 버렸다는 얘기가 있다)가 돼 있어서 참으로 고맙다. <굿윌 헌팅>에서 나를 설레게 했던 지적인 맷 데이먼이 본 시리즈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억지 같지만 박서준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내 맘이 그렇다. 지금은 누가 봐도 인정하는 원탑 남주가 됐으니 말이다.     


여하튼 지금 나는 이렇게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다. 밤에는 박서준을 보느라 정신이 나가 있고, 낮에는 늦게 자서 골골대느라 정신이 나가 있다. 그래도 어제 <쌈 마이웨이> 마지막 회를 끝냈으니 천천히 그에게서 빠져 나와야지.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이러고 있는 걸 남편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박서준 때문에 아내가 잠도 못 자고 있다는 걸 알면 기가 차서 말도 못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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