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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Apr 16. 2020

하고 싶은 만큼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딱 그 만큼만 적당히

대학교 졸업반의 막연한 두려움은 나를 뭐라도 하게 만들었다. 오만 것에 관심을 갖고 살던 나도 그제야 덩달아 벼락치기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날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학교 안에 가득 핀 벚꽃 때문이었는지, 살랑거리는 내 마음 때문이었는지 내내 창밖만 보다 하루가 갔다.


결국 이날 계획한 공부량을 채우지 못했다. 가방에 무거운 책을 욱여넣었다.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집중해서 빨리 끝내자는 생각이었는데 도서관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 못한 건 집에 가서 하면 되지 하고 생각했다.


가방을 짊어지고 집에 돌아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마음이 느긋해지고, 한정 없이 쉬고 싶다. 그러다 집에서까지 책을 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이른다. 결국 가방 속 책은 가방 밖 구경도 못한 채 다음날 다시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집에서 해야지’ 하고 책을 가방에 넣고 집에 돌아온다.


그렇게 매일 희망사항 공부량을 지고 왔다 갔다 했다. 집에 누워 불룩한 가방을 바라보다 문득 ‘어차피 보지도 않을 책을 왜 들고 다니나’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집에서 책은 펴보지도 않을 거란 걸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 말이다.


내가 싸 들고 다닌 책은 일종의 마음의 짐 같은 거였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목표 점수에 대한 불안감이 그 짐을 들고 다닌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몸을 힘들게 했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만큼’이 아니라 정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미련하게 책만 들고 다니는 일은 하지 않았다.

출처 : https://www.freepik.com/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는 몸보다 마음이 앞설 때가 많았다. 아침부터 아이에게 열과 성을 다한다. 맘 같아서는 뭐든 다해주고 싶은데 내 체력은 그걸 못 받쳐준다. 결국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되면 아이보다 먼저 지치고 말았다. 아이는 여전히 놀아 달라고 하고 나의 고갈된 체력과 인내심은 짜증으로 바뀌곤 했다. 아이는 그저 낮의 활기찼던 엄마를 원했을 뿐인데 일관성 없는 나의 몸은 이미 지쳐버렸다.


밥만 해도 그렇다. 열심히 식사 준비를 했는데 아이가 안 먹으면 그렇게 속이 상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만든 건데! 이러면 엄마가 뭐 하러 밥을 하니! 다음부터는 맛있는 음식 안 해줄 거야” 말도 안 되는 협박도 했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그저 먹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입맛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거기엔 내가 식사 준비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다. 막장 드라마에서 엄마가 아들에게 하던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혹은 며느리한테 하던 “우리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와 같은 말을 내가 하고 있다.


아이에게 그런 막장 대사를 치지 않으려면 내 멋대로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최선을 다해 잘하지 말고 나도 좀 돌봐 가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후로 나는 나를 ‘적당히’ 나눠서 쓰기로 했다. 아이에게 내 전부를 쓰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쓰고, 남편에게도 쓰기로. 육아도 아침부터 전력 질주하지 말고 마라톤 하듯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사람이 하고 싶은 게 있고, 할 수 있는 게 있다. 기대치와 역량이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겠다. 그 둘이 적당히 맞아떨어지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대체로 흔하지 않다. 보통 기대치가 역량보다 크다. 왜 나는 이것밖에 안되냐며 자기비판하며 스스로에게 실망을 한다.


하지만 꺼내 보지도 않을 책을 보며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것보다 어차피 보지 않을 책은 걱정과 함께 도서관 사물함에 놓고 오는 게 내겐 바람직했다. 혼자 지지고 볶고 혼신의 힘을 다해 밥을 해놓고 ‘내가 어떻게 만든 건데 안 먹냐’며 화내는 것보다 좋아하는 음식을 적당히 차려주는 게 내겐 긍정적이었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는 것.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

그것을 꾸준히 하는 것.

적당히 잘하고 있는 자신을 칭찬하는 것.


하고 싶은 만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정당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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