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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May 03. 2020

코로나, 그리고 240번 집밥의 기록

우리의 봄은 빼앗겼지만, 그럼에도 늘어난 몸무게는 남겼구나!

이 글은 코로나 19로 집에서 생활한 지 3개월이 된 4세, 7세를 키우는 엄마의 그동안의 지난했던 집밥에 대한 기록이다.  


사회적 격리 두기에 들어간 지 3달이  돼 간다. 달리 말하면 ‘집콕 생활’, ‘타의적 자택 감금 생활’쯤 되겠다. 날로 계산하니 80일이 훌쩍 넘었다. 내가 사는 수원은 지역 확진자가 나와 정부의 공식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에 앞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휴교가 결정됐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단연 밥이다.  김훈 작가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말했지만 나의 '밥하기의 지겨움'도 대단했다. 나야 귀찮으면 한 끼쯤 안 먹어도 되지만, 아이들한텐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아이 밥에 민감한 엄마라 더욱 그랬다.


‘돌 밥’이라 했던가? 아침 먹고 치우면 점심이고, 점심 먹고 치우면 간식이며, 간식 먹고 치우면 저녁이 돌아왔다.


‘아! 밥만 안 해도 살겠다’ 

매일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얘 밥은 먹여야지.

그럼에도 그동안 내가 가장 신경 쓴 게 아이들의 밥이었다.


80여 일 동안 하루 세끼 아이들의 밥을 해 먹였다. 간식을 제하고도 240끼가 족히 넘는 밥을 매번 차리고 치웠다.


몇 달 동안 삼시 세끼 아이들 밥 해먹인 내가 스스로 대견해서 틈 나는 대로 밥 사진을 찍어뒀다.


그래도 성과는 있다. 항상 몸무게가 신경 쓰이던 첫째 아이는 코로나 강제 집콕 생활 중 2kg가량 살이 붙었다. 이번이 기회다 싶어 정말 열심히도 먹였다. 아이도 크려는지 잘 먹어줬다.


편식은 여전하지만 먹는 음식이 몇 더 늘었다. 장조림도 안 막던 아이가 이젠 "죽엔 장조림이지!"라고 외친다. 떡갈비도 최애 메뉴로 등극했다. 먹는 양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한 번씩 아이 몸무게가 최고치를 경신할 때마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 만한 게 없다'는 어른들의 말을 실감하고 있다. 첫째 아이 얼굴에 이렇게 살이 올라온 건 아기 때 이후 처음이다.

아침부터 힘을 쏟지 않으려 아침식사는 간단하게 먹기로 했다. 누룽지, 죽, 빵, 토스트, 와플, 떡, 시리얼 등을 돌려가며 냈다. 빵은 언제나 잘 먹은 메뉴.


식빵은 오븐에 구워 딸기잼과 버터를 얹어주거나, 계란물에 흠뻑 적셔 노릇하게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었다. 크루아상 생지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면 갓 구운 빵을 먹을 수 있다. 나중에는 크루아상을 와플팬에 눌러 익히는 크로플도 자주 해 먹었다.

점심엔 가능한 밥과 몇 가지 반찬을 었다. 몇 칸의 빈 그릇에 매번 다른 반찬을 채우는 건 매번 쉽지 않다. 아이가 국을 좋아하지 않고, 나물이나 마른반찬도 잘 먹지 않아 가급적 매끼 반찬을 해야 했다.


그러다 반찬 하는 게 힘든 날엔 한 그릇 음식으로 해결했다. 참치 오니기리, 치즈밥, 덮밥, 카레, 무스비를 준비하는 날은 차라리 좀 편했다. 그러다 가끔 아침을 밥으로 잘 먹은 날엔 피자나 맛탕으로 쉽게 넘어가기도 했다. 엄마에게 쉬운 식사도 있어야 하니까.


코로나로 회사의 모든 회사 회식이 사라지면서  저녁식사는 남편의 유일한 하루의 낙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특별한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등갈비, 스테이크, 닭꼬치, 떡볶이, 떡갈비 등. 


아무 것도 못하겠다 싶은 날엔 치킨을 시켜먹기도 했다.



주말엔 아이들과 도시락을 싸서 사람이 없는 뒷산으로 소풍을 떠났다. 아이들은 밖에서 밥을 먹는 것에도 충분히 즐거워했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엔 집 베란다 잔디에서 소풍을 즐겼다. 진짜 잔디는 아니고 인조잔디지만.


소풍의 핵심은 도시락 그릇에 메뉴를 담는 것이다. 김밥이든, 샌드위치든 뭐든 간에. 그래도 창문을 열고 창밖을 보며 도시락을 먹으니 소풍 온 기분이다.



하다 하다 마들렌도 굽고, 빵도 굽고, 쿠키도 굽고 아이들과 함께 깍두기도 담갔다(먹진 않았지만 ㅠㅜ).



코로나 탓에 올봄은 빼앗긴 기분이다. 사시사철 중 가장 좋아하는 봄을 느끼지 못해 무척 속상하다. 이대로 여름이 오고 있는 것 같아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는 80여 일240끼가 넘는 집밥을 통해 아이의 늘어난 뱃구레와 몸무게를 남겼다. 물론 늘어난 몸무게와 뱃살도 께 남기긴 했다.


정말이지, 코로나 19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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