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May 15. 2020

단발머리와 백팩, 그리고 아줌마

여자는 왜 아기를 낳으면 긴 머리를 자를까?

왜 여자들은 아기를 낳으면 긴 머리를 자를까?
그 많은 가방 다 놔두고 왜 백팩만 메는 걸까?
아기 엄마는 왜 힐을 신지 않는 거지?
미니스커트와는 정말 안녕해야 하는 걸까?

단발머리에 백팩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아기 엄마를 볼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왜 아기를 낳으면 엄마들은 다 비슷한 사람이 되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머리를 하고 맘에 드는 가방을 들고 높은 구두를 신을 수는 없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단발머리와 백팩 그리고 운동화가 아줌마가 되는 관문처럼 느껴졌다. 풀어헤치고 다니던 긴 머리가 단발머리가 되고 핸드폰 하나 들어갈 것 같은 작은 핸드백 대신 투박한 백팩을 둘러메고 운동화를 신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아줌마가 돼 버릴 것 같았다.

쓸데없이 오기가 생겼다. ‘그래 난 아이 낳아도 절대 머리를 자르지 않을 거야’ 하고 다짐했다. ‘터질 듯 기저귀 가방도 들지 않을 거야’ 하고 굳게 마음먹었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나는 매일 아침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힘들게 몸을 일으켜 우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시작한다. 어젯밤엔 몇 번 깼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오전 내내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아직 세수도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푸석푸석해 당장이라도 갈라질 것 같은 건성피부에 턱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보고 싶지 않아 가능한 거울도 보지 않았다.

아이의 낮잠을 재우고 씻을라치면 또 깨서 울기 일쑤다. 이제 막 샴푸를 시작했는데 그러면 아주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좀 울리면 됐는데 그땐 아이를 울리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대충 헹구고 나와 우는 아이를 안아 달랜다. 긴 머리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진다. 미역 같은 머리를 좀 말리고 싶은데 드라이기를 켜면 또 울면서 나자빠진다. 아 이놈의 머리를 확 밀어버리든가 해야지.

절대 백팩은 메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기저귀 가방은 어깨에 메는 걸로 구매했다. 다른 사람들이 잘 안 드는 걸로 고르느라 한참이 걸렸다. 맘 같아서는 기저귀 가방 따위 안 들고 싶었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려면 기저귀, 물티슈, 물, 간식, 장난감 등 챙길 게 너무 많아 웬만한 가방으론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와 합의한 게 기저귀 가방 같아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가방이었다. 아기띠에 안긴 아이도 무거운데 어깨에 맨 가방 끈이 자꾸 흘러내린다. 계속 가방을 고쳐 매다 이놈의 가방을 내동댕이치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이던가.

출산 전에 입던 미니스커트는 손도 못 댔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하루에도 몇 번씩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하는데 미니스커트는 그런 동작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수유를 할 때는 원피스는 입지도 못하며, 상의엔 단추가 있어야만 했다. 그러니 옷 입는 맛이 나지 않을 수밖에. 나는 수유복이 싫어서 둘째 때는 분유를 먹여야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나마 힐은 잘 신지 않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아이를 낳고도 1년여를 고집하던 긴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집에 와서 머리를 감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머리를 잘랐을 뿐인데 머리 감기가 정말 편했다. 말리는 것도 어찌나 가뿐하던지. 다시 머리를 기르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머리가 뭐라고 그렇게 쓸데없이 오기를 부렸는지. 어차피 머리가 길어도 묶는 것 외엔 다른 머리는 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둘째 아이를 낳고는 백팩부터 구입했다. 가볍고 어디에나 멜 수 있는 검은색으로 말이다. 백팩을 메고 다니며 또 한 번 나의 오기를 후회했다. 등에 메니 두 손이 자유롭다. 이렇게 편한 걸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건데 말이다.

나는 아줌마라는 단어에 담긴 억척스런 이미지를 나와 동일시하고 싶지 않았다. 이모(아이를 낳으면 아이 친구에게 나는 이모라고 불리게 된다)는 괜찮지만 아줌마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고 백팩은 메고 싶지 않았다. 근거 없는 자존심이었다.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춰 이르는 말이다. 아주머니는 애를 낳은 여자(애 엄마)의 어원으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부르는 말이다. 결혼해서 애 낳은 엄마가 아줌마면 달리 내가 아줌마가 아니고 뭔가. 그래 나 아줌마다.

아이 둘을 낳고 나서야 나는 내가 아주머니, 아줌마임을 받아들였다. 오래도 걸렸다. 아줌마가 뭐 어때서!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그리고 240번 집밥의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