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조지아왕국의 발자취를 찾아 (1)>
조지아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성스러운 곳을 뽑으라면 단연 므츠헤타다. 기원전 3세기에서 서기 5세기까지 고대 조지아 왕국(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므츠헤타와 그 일대에는 초기 기독교 유적을 비롯한 고대-중세의 유적들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기원전 3세기의 아르마즈지헤 요새와 기원전 1세기의 아르마즈지헤 성은 조지아 역사의 유구함을 보여준다. 초기 기독교의 기적과 전설을 간직한 즈바리 수도원, 스베티츠호밸리 성당, 삼바브로 수도원 등은 이곳이 얼마나 성스러운 곳인지를 알게 해 준다.
한 마디로 므츠헤타는 조지아인들의 발원지이자, 정교를 중심으로 고난의 역사를 극복해 온 조지아인의 신앙의 중심지이자 영혼의 고향 같은 곳이다.
쿠라강과 아라그비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므츠헤타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일 먼저 찾은 즈바리 수도원은 산 정상의 가파란 절벽 위에 서 있었다. 자동차가 아니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위치다. 막상 수도원으로 오르는 길은 완만했다. 수도원 입구 언덕 위에 서니 쉽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졌다. 발 아래로는 쿠라강과 아라그비 강이 하나의 물줄기로 합해져 흘러가고 있고, 눈을 들면 평온한 므츠헤타 마을과 스베티츠호밸리 성당이 한 눈에 들어왔다. 웅장한 자연과 인간이 창조한 문명의 한 페이지를 보는 듯 했다. 거센 바람이 쉼없이 언덕을 훑고 지나가고 있었다. 강바람과 산바람이 만난 탓일까. 높은 지대와 강물, 그리고 거센바람은 수도원(요새)가 자리잡는데 천혜의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성녀 니노는 조지아의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4세기 경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래에 따르면 <카파도키아의 난민 출신인 노예이자 수녀인 성녀 니노는 계시를 받고 조지아 땅으로 들어왔다. 성 니노는 고생 끝에 조지아의 남부 아할치헤주의 ‘자바헤티’에 당도하였다. 다시 '어버니시'까지 온 니노는 그곳에서 므츠헤타로 향하는 상인들 틈에 끼어 마침내 므츠헤타에 도착했다. 니노는 므츠헤타의 유대인 지구에 머물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돌보면서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성녀 니노는 여러 기적을 행하였는데 특히 당시 카르틀리왕국을 다스리던 미리안 3세의 왕비 니나의 병을 낫게 하는 기적을 행했다고도 전해진다.
미리안 3세의 기독교 개종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사냥을 나간 미리안이 짙은 안개에 갇혀 꼼짝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를 드렸으나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미리안은 다시 니노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안개가 걷혔다. 이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인 미리안은 그 즉시 기독교로 개종하고,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세례를 해 줄 수 있는 사제를 보내줄 것을 청하였다>.
니노의 노력으로 334년 기독교로 개종한 미리안 3세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즈바리 언덕에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나무 십자가를 미리안이 아닌 니노가 세웠다는 설도 있다). 585-604년 카르틀리의 공작 스테파노즈 1세가 십자가가 세웠던 있자리에 수도원을 세운 것이 지금의 즈바리 수도원이다. 즈바리는 조지아어로 십자가란 뜻이다.
수도원 입구에는 예수의 승천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서니 중앙에 천장까지 높이 솟은 거대한 나무십자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리안 왕이 세웠다는 십자가이다. 벽에 걸린 성화 몇 점 외에 성당 내부에는 별다른 장식물들이 없었다. 스베티츠호밸리 성당의 전설을 묘사한 성화도 있었다.
조지아 성당에서 유일하게 6세기에 건립된 모습 그대로인 성당이 바로 즈바리수도원이라고 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재단 위 십자가에 가서 닿았다. 어두운 성당 안에 성령이 깃든 듯했다. ‘나는 빛이요, 생명이니…' 라는 성경 구절이 실현되고 있는 듯했다.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누가 이곳에서 성령을 입었다고 외친다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즈바리 수도원은 본당을 중심으로 사방에 반원형 볼출부가 있고, 돌출부 사이는 본당과 부속 예배당을 연결해주는 원형의 통로로 이루어져 있다. 테라콘 양식이라 불리는 즈바리 수도원의 건축 양식은 이후 남코카서스 교회 건축의 모델이 된다.
수도원 주변에는 중세 말에 건립된 성벽과 돌로 쌓아 만든 요새의 흔적이 남아 있다. 파괴와 부식이 심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즈바리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즈바리 언덕에 서서 두 물줄기가 만나는 장엄한 광경을 목도한다. 왕조는 망하고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멈춤 없이 흐르는 도도한 역사의 물결을 마주한 느낌이다. 강 너머로 지금 만나러 가는 스베티츠호밸리 성당이 역광 속에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