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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Jul 18. 2019

[조지아 여행] 조지아 전통 크베브리와인

<조지아 와인여행(2) > 

# 조지아 여행에 대한 더 많은 얘기가 도서 <소울풀 조지아>로 출판되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aladin.kr/p/DPDFa


8톤짜리 크베브리의 위엄 –익사하기도 해  



신이 내린 땅 조지아. 인류 와인문명의 발상지 조지아. 8000년의 와인의 역사를 가진 조지아. 그 옛날 조지아에서는 어떻게 와인을 만들었을까. 답은 ‘크베브리 와인’이다. 지금도 면면히 이어져오는 크베브리라 불리는 점토항아리를 이용한 전통양조법은 그 독특성과 조지아 사회의 정체성에 기여한 바가 인정되어 2013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크베브리는 레스토랑, 와인숍, 와이너리의 마라니, 오래된 수도원 등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성인의 키보다  큰 것부터 물항아리만한 작은 것까지, 달항아리처럼 불룩한 것과 계란형까지 또  아가리가 넓은 것과 뾰족한 것까지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매우 다양하다. 
  
 “뚜껑은 살짝 열어 놔라. 안그럼 뚜껑 열 때 펑하고 터져버리니까.” “
 “근데 플라스틱 통보다는 항아리가 더 좋지 않아요?”
 “항아리가 훨씬 좋지, 근데 요즘 누가 항아리 쓰니?”
 “그러게요. 요즘 항아리도 거의 안 보여요.”  
 
 엄마와 동생이 매실액을 담그면서 나누는 얘기가 귀에 쏙쏙 박혔들었다. 듣다보니 우리의 전통주나 매실액 담는법과 조지아의 전통 양조법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 신기했다. 무엇보다 모두 진흙으로 빚어 구운 토기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어쨌거나 가스가 빠질 때까지 밀봉을 하지 않는다든가, 땅에 묻는다든가 하는 디테일이 너무 닮아 펭귄 박수까지 쳐댔다. 


 다시 크베브리로 돌아오자.  
  
 
 

인터넷 갈무리



조지아에서 크베브리는 흔히 여성의 자궁에 비유된다. 태아가 어미의 자궁 안에서 열 달 동안 양분을 공급받아 완전한 생명체로 태어나는 것처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크베브리 안에서 포도가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쳐 와인으로 태어난다는 뜻일게다. 
  
 조지아에서 와인양조에 토기가 사용된 것은 기원 전 6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약 50km떨어진 크베모카르틀리주의 슐라베리산(Шулавери гора)의 신석기 정착지에서 기원전 6000년 전에 제작된 포도문양의 크베브리가 발견되었다(*현재 조지아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토기의 바닥에 남아 있던 잔여물에서 와인의 흔적인 타타르산 성분이 검출되었다. 이 연구결과로 인류의 와인문명의 시원은 몇 백년이나 앞당겨졌고, 와인제조에 토기가 사용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크베브리가 와인 제조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은 한참 후인 기원전 6세기부터이다. 조지아에서 발견된 크베브리도 이 시기에 제작된 것들이 많다. 기원 전 3세기 이전까지는 비교적 작은 크베브리가 많이 사용되었다. 높이는 1.5미터를 넘지 않았고, 바닥이 편편하고 허리부분이 넓어서 세워두거나 땅에 얕게 묻었다. 기원 전 3세기부터 점차 바닥이 좁아지면서 목부분까지 땅에 묻기 시작했다.
  
 
 좋은 크베브리 하나를 만드는 것이 집 한채 짓는 것보다 어려워 
  
 

조지아에서는 ‘좋은 크베브리 하나를 만드는 것이 집 한 채를 짓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인터넷 갈무리




황 순원의 소설 ‘독 짓는 늙은이’를 보면 독 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 있다. 평생을 독 짓는 일만 해오던 송 영감에게도 독 짓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더 좋은 독(옹기)을 향한 열정과 고집 그리고 자신이 만든 뒤틀린 독을 모두 깨부수고 스스로 뜨거운 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송 영감의 모습이 모든 장인들의 모습일 것이다. 조지아에도 수많은 송 영감들이 있어 묵묵히 크베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잘못된 크베브리는 와인의 맛까지 모두 망쳐버린다. 때문에 좋은 와인을 만들려면 좋은 크베브리가 필수적인데, 무엇보다도 흙이 좋아야 한다. 1000도가 넘는 고온에서 구워낸 토기에는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을 통해 공기가 드나들게 되는데, 이른바 ‘숨쉬는 크베브리’가 포도와 포도줄기 등 다양한 성분들이 어우러지면서 맛과 향을 내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크베브리가 계란모양인 것도 와인의 발효와 숙성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인터넷 갈무리



크베브리는 몇백 리터에서 몇 톤짜리까지 크기가 다양한데 1-2톤 짜리가 가장 많다. 간혹 8톤짜리 대형 크베브리를 만들기도 한다. 
 
 조지아에는 ‘물에 빠져 죽는 사람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다’는 속담이 있다. 조지아인들의 와인 사랑을 보여주는 말인 동시에 크베브리가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러시아 작가 푸쉬킨의 <아라즈룸 여행>에도 와인에 빠져 죽은 사람 얘기가 등장한다. 
  
 ‘조지아인들은 포도주를 커다란 크베브리안에 담아 마라니(Marani, 크베브리 와인 저장고)에서 보관한다. 한 러시아 병사가 와인이 담긴 크베브리에 빠져 익사했다.'
  
 실제로 대형 크베브리도 많이 사용되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몰래 혹은 취해서 와인을 퍼 담으려다가 빠지는 것이 아닐지. 
 
 크베브리가 이렇게 크다보니 크베브리를 세척하는 일도 ‘큰 일’이었다. 때문에 마을에는 보통 1-2명의 크베브리 청소 전문가가 있었고, 그들은 크베브리를 청소하는 동안 밖에서도 들리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크베브리 청소’라는 제목의 ‘청소송’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들어보지는 못했다. 
 


크베브리의 ‘몸값’ 
  


 크베브리의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 
 
 

인터넷 갈무리



우리나라에서는  75리터짜리 옹기가 12만원 정도이다. 꽤 비싼 편이다. 크베브리도 항아리 못지 않게 비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1리터당 1달러 정도라고 한다. 대략 계산해도 500리터 짜리는 500달러, 1000리터면 천 달러다. 
 
 우리나라의 옹기와 마찬가지로 조지아에서도 크베브리는 많이 사라졌다. 일반 가정에서는 크베브리보다는 플라스틱 통을 더 많이 사용한다. 가격이나 보관, 세척 등을 가성비를 따지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수요가 없으니 크베브리를 만드는 것도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구리아의 아트사나, 마카투바니, 쉬로샤, 켐로바나와  북부 이메레티주의 치히로울라 그리고 동부 카헤티주의 바르디수바니 마을 정도에 크베브리 도예 전통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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