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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Jul 27. 2019

[조지아 여행] 조지아 와인의 심장, 카헤티

<조지아 와인 여행(3)> 

# 조지아 여행에 대한 더 많은 얘기가 도서 <소울풀 조지아>로 출판되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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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와인의 심장부, 카헤티





카헤티는 조지아와인 ***이다. 나는 ***대신에 주저없이 ‘심장부’다 라고 얘기할 것이다. 보르도나 브로고뉴가 프랑스와인을 대표하듯이, 카헤티는 조지아 와인을 상징한다. 전체 조지아 와인생산량의 60% 이상이 생산되는 최대 와인산지임은 차치하고서라도, 조지아 와인의 맛과 양조방식의 전통을 지켜온 것이 바로 카헤티이다. 

 프랑스의 보르도 와인산지가 세 개의 강- 지롱드강, 도르도누강, 가론강 –을 끼고 발달한 것처럼 조지아 카헤티의 와인산지도 알라자니라는 강을 끼고 형성되어 있다. ‘강이 흐르는 곳에 포도밭이 있다’라는 보르도 지방의 옛 속담은 카헤티에서도 유효하게 맞아 떨어진다. 


카헤티의 포도밭의 젖줄기는 코카서스 산에서 발원하여 카스피해로 흘러드는 알라자니강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미네랄이 풍부한 코카서스의 빙하수로 수량이 풍부해진 알라자니의 범람으로 영양분과 수분이 풍부한데다가 배수가 잘되는 토양이 만나 최적의 ‘테루아’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흑해의 따스한 바람과 시리아 고원의 햇빛이 더해진 조지아 고유품종 사페라비와 르카치텔리가 조지아와인만의 특별한 맛을 내는 것이다. 조지아의 18개 PDO중 14개가 알라자니강의 좌안과 우안에 밀집되어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주도인 텔라비를 비롯해 시그나기, 크바렐리, 라고데키 등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진 알라자니 강 유역에는 킨즈마라울리, 쯔난달리, 라파레울리, 텔라비 등 조지아의 유명 와이너리들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수 십개의 와이너리들이 포진해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카헤티와인을 최고의 와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때문에 과거에는 북부나 서부에서 생산되는 와인에도 ‘카헤티 와인’라벨을 붙여 파는가하면 상점들은 ‘카헤티와인’이라는 가짜 간판을 내걸었다. 생계수단으로 상점의 간판을 그린 조지아의 천재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도 주인의 요구에 따라 ‘가짜 카헤티 와인상점 간판’을 그려주기도 했을 정도다. 


때문에 조지아의 와인투어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조지아 와인의 성지 카헤티로 몰려드는 것이다.


포도가 익어가는 가을 카헤티 들녘


카헤티의 가을 들판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으로 빛난다. 이른 봄부터 농부들이 흘린 땀방울이 맺은 짙은 바이올렛빛과 싱그러운 초록빛 포도송이가 들판에 넘실댄다. 해질 녘 산꼭데기,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수도원에 올라 붉게 물들어가는 대지의 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아마도 농부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수고로움을 치하하는 신의 손길이리라. 




“우와 저것봐. 저거 트럭에 실린 게 뭐야?”

“어머 저거 포도 아니니?”

“어 진짜, 저거 다 포도야…”



텔라비에서 시그나기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텔라비 와인셀러’로 포도를 실어나르는 트럭행렬과 맞닥뜨린 우리는 온갖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우리는 차를 세우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차에서 내렸다. 그저 포도수확철의 흔한 광경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9월이니까조지아니까, 카헤티니까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풍경이었다. 그때 멀찍이 서 있던 포도의 주인인 듯한 농부가 다가오더니 먹어보라며 포도송이를 나눠 주었다. 


“스빠씨바, 스빠씨바~” 


조지아어는 모르겠고 러시아어로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우와! 완전 달아!” 

“너무 맛있다~.”

“진짜 어쩜 이렇게 달지…?” 






우리는 걸신들린 사람들처럼 포도 한 송이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이렇게 당도가 높은 포도는 처음 먹어 보았다. 와인을 담그는 포도는 당도가 높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우리가 먹은 포도는 르카치텔리라는 품종으로 카헤티지역의 화이트와인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말로만 듣던 르카치텔리를 직접 먹어 보게 되다니…조지아 와인을 정복하기라도 한 듯 뿌듯했다.  


농부는 가면서 먹으라며 비닐 봉지 가득 포도를 싸 주기까지 했다. 생각지도 않은 조지아 농부가 베푼 인정에 순간 가슴이 뭉쿨해졌다. 무릎 위에 올려 놓은 검정 봉다리는 숙소에 돌아오는 내내 조지아 농민과 카헤티의 들판이 되어 가슴에 훈훈한 온기를 전해 주었다. 





조지아 가을 여행을 계획하면서 카헤티지역의 하베스트 풍경을 꼭 보고 싶었다. 포도밭에서 직접 포도도 따고, 와인을 담그는 체험 프로그램에도 참가할 수 있기를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와인담그기 체험은 커녕 농가의 근처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실망감을 농부와의 짧은 만남이 한방에 날려 버려준 것이다. 

혹시라도 ‘리얼 와인체험’을 원한다면 미리 입장이나 체험이 가능한 와이너리를 수배해 두는 것이 좋다. 농장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는 곳은 아무데도 없으니까 말이다.



 크베브리 양조법 



이전 글에서 소개한 조지아의 전통양조법인 크베브리 와인 양조기술은 4세기 기독교 전래 이후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수도원에서는 대규모로 와인을 만들었는데 네크레시 수도원에는200평방미터 규모의 마라니(*크베브리 와인저장고)와 한번에 10톤의 포도를 압착할 수 있는 압착기 5대나 있었다고 한다. 크바렐리의 이칼토 수도원과 알라베르디 수도원, 쿠타이시의 겔라티 수도원, 바르지아 수도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네크레시 수도원과 이칼토 수도원에는 마라니(*크베브리 와인저장고)가 남아 있고, 그레미성 뽀그립(와인셀러)에는 '사츠니헬리'라는 커다란 사각모양의 압착기를 볼 수 있다.  ‘Since 1011' 이라는 라벨처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알라베르디 수도원은 무너진 와이너리를 복구해 제 2의 전성기를  구가중이다. 


크베브리 와인양조법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카헤티 지방에서는 사츠니헬리(압착기)에서 압착한 포도즙과 차차(포도껍질, 포도줄기, 씨앗)의 혼합물을 크베브리의85%정도 채운 후 목부분만 남기고 땅 속에 묻고 밀봉한 후 5-6개월동안 발효시킨다.

반면 서부 이메레티에서는 압착기로 짠 포도즙과 차차2.6%를 함께 크베브리에 넣은 뒤 1-2개월 발효시킨 후 11월에 차차를 제거하고 크베브리를 밀봉한 후 봄까지 숙성시킨다. 

흑해 및 라차-레치후미 지역에서는 으깬 포도를 프레스에 넣은 채 4-5일 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발효 중인 포도즙을 크베브리에 부어 계속 발효시키고 봄까지 숙성시킨다.


땅 속에 묻은 크베브리는 14도 정도의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어 발효와 숙성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된다. 크베브리 안에서 혼합물들은 서로 부딪히면서 떫은 맛을 내기 시작하고 포도줄기에 함유된 다양한 성분과 어우러지면서 맛과 색을 내기 시작한다. 차차는 밑으로 가라앉고 휘발성, 비휘발성 성분에 의해 와인이 숙성되기 시작하고 비휘발성 물질이 추출되면서 와인이 제 맛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크베브리 와인은 호박색(Amber)을 띠게 되며 독특한 향과 깊은 맛을 낸다. 유럽에서는 오렌지 와인이라고도 부른다. 조지아 사람들은 크베브리 와인을 결혼식과 같은 가족행사날에 개봉하여 가족과 이웃이 함께 나눠마시거나 귀한 손님이 오면 새로 크베브리를 개봉하여 대접하였다. 잘 만들어진 크베브리 와인은 100년까지도 보관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늘날 조지아에서 전통적인 크베브리 제작기법이 사라져 가듯이 전통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 역시 많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카헤티, 이메레티, 라차-레치후미, 구리아, 아브하제티, 사메그렐로, 삼츠헤-자하헤티, 아차라, 츠힌발리 등에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의 전통이 남아 있기는 하나 언제까지 그 전통이 이어질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와인시장에서 크베브리 와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며 흐반치카라, 찌난달리, 킨즈마라울리, 티바아니같은 PDO들과 알라베르디 수도원이 상업적인 목적이긴하나 크베브리 와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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