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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Apr 13. 2018

중앙아시아 3개국 여행

떠나기 전, 주저앉고만 싶었다.


여행의 기술


    


   


 "어느 날 아침 런던을 여행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치솟았다. 디킨스의 책을 읽자 영국인의 삶의 모습들이 떠올랐으며 한참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나 기차 시간이 다가오면서, 그와 더불어 런던에 대한 꿈이 현실로 바뀔 시간도 다가오면서 데제생트는 권태에 사로잡혔다. 실제로 여행을 하면 얼마나 피곤할까. 역까지 달려가야 하고, 기차에 올라타야 하고, 익숙하지 않은 침대에 누워야 하고, 줄을 서야 하고, 약함 몸에 추위나 더위를 느껴가며 볼거리들을 찾아 움직여야 하고...


    그는 기차역 주변의 선술집에 앉아 '의자에 앉아서도 아주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직접 다닐 필요가 뭐가 있는가? 런던의 냄새, 날씨, 시민, 음식, 심지어 나이프와 포크까지 다 주위에 있으니, 나는 이미 런던에 와 있는 것 아닌가. 거기 가서 새로운 실망감 외에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알랑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중에서>


     



알랑 드 보통 그가 옳다.

중앙아시아 꼭 갈 필요 없잖아?


    


    지난 여름의 나의 여행을 되돌아보니 알랑 드 보통이 쓴 글과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난 '하늘과 가장 가까운 키르기스스탄의 송쿨 호수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에 사로잡혀 중앙아시아로 떠나야 한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나 알마티에 있을 때 와라, 숙박과 차량은 책임질게'라는 친구의 말은 타오르는 열망에 부은 기름과 같았다.


     항공권을 구매하고, 우즈베키스탄 비자를 취득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일정을 짜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출발일이 다가오면서 문득 찾아온 귀차니즘과 의구심. 꼭 가야 하나. 밤하늘의 별? 그거 안 본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가서 본다고 내 삶이 달라질 것도 없고.  




    


    무거운 짐가방, 푹 꺼진 침대,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더러운 거리와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들, 체감온도 50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이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주저앉고만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 물리고 싶었다. 물론 할 수는 있다. 이미 내 손안에 있는 항공권과 비자 발급과 예약한 호텔들에 들어간 돈은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려라! 한다면.  


    여하튼 난 출발일 무거운 마음으로 끙끙대며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갔다. 수속을 마치고 좌석의 안전벨트를 맸다.


    그래 이제 비행기만 뜨면 되는 거야. 가보자.


    그런데 비행기는 한 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맙소사. 이건 최악이다.


    나의 중앙아시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커다란 배낭 하나 메고 수 십일을 지구를 떠도는 배낭여행 가는 아니다. 여행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다. 물론 다양한 형태의 해외여행 경험은 꽤 있는 편이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날 여행'은 처음이었다.


    14박 15일 동안 혼자 일정을 짜고, 혼자 짐가방을 질질 끌며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하고, 국경을 넘는 여행은 단연코 처음인 여행 초짜다.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것은 내가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고생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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