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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May 05. 2018

[아르메니아 여행] 아르메니아 벨벳 혁명의 현장에서

4월 25일. 아르메니아 예레반. 맑음


"혁명이 일어났어요."

"뭐라고요?"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 공화국광장, 2018년 4월 23일 반정부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다.


   

    어제 저녁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택시기사가 하고 있었다. 나는 어제 저녁 트빌리시에서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으로 넘어와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탄 터였다.


    혁명이라니...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르메니아'검색을 해 보았다. 지난 10년 동안 아르메니아에서 독재정치를 하던 세르지 사르키시안총리가 퇴임했다는 내용이다. 시민들은 지난 며칠동안 그의 퇴임을 요구하며 광장에서 평화시위를 벌였고, 그 결과 23일 총리직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아르메니아 민주화 운동, 2018년 4월 25일, 수도 예례반 공화국광장 , 시민들은 그들이 원하는 총리가 선출과 내각이 구성될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아르메미아에 온 날, 아르메니아는 그런 거대한 역사의 흐름속에 있었다니. 감회가 남다르다. 도착한 24일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3주년 기념일이었는데. 아르메니아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현정세를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웠다.



2018년 아르메니아 민주화 운동, 2018년 4월 25일, 수도 예례반 공화국광장에 모인 시민들

    


    아르메니아인들은 민주화 평화시위를 '혁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렇다. 그건 분명  '평화혁명' , '벨벳혁명', '무혈혁명' 이었다. 카프카즈 산맥 아래서 조용히 자유와 민주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힘으로 독재자를 물리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아르메니아 민주화 운동, 2018년 4월 25일, 수도 예레반 공화국광장, 시민들은 그들이 원하는 총리가 선출과 내각이 구성될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2년전 우리나라의 '촛불혁명'의 시간이 오버랩되었다. 결국 우리는 승리하였던 것 처럼, 아르메니아인들도 자유와 민주를 향한 발걸음에서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게 된다.  




레2018년 아르메니아 민주화 운동, 2018년 4월 25일, 수도 예레반 공화국광장에 모인 시민들



    오늘도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광장은 활기가 가득하다.  집회분위기도  우리와 비슷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희망과 단호한 의지로 상기되어 있었다.  몇몇 청년들은 아르메니아 국기를 몸에 휘감거나 등에 두르고 거리를 활보했다. 시민들은 삼삼오오 분수가나 나무 그늘에 앉아서 광장의 분위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르메니아 민주화 운동, 2018년 4월 25일, 수도 예레반 공화국광장, 시민들은 그들이 원하는 총리가 선출과 내각이 구성될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광장 멀찌감치 서서 광장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장년층들도 보였다. 가끔 경찰들도 10명 남짓 줄지어 시위대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보였다. 그러나 어떤 무력진압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상점이나 식당, 버스나 택시, 전철 등 모두 정상영업을 하고 있었다.

    



아르메니아 민주화 운동, 2018년 4월 25일, 수도 예레반 공화국광장, 시민들은 그들이 원하는 총리가 선출과 내각이 구성될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나무 그늘가에 서 있는 중년의 남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시위를 하는 거지요?"  짐짓 모른 척 시민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우리는 자유와 민주를 원해요. 지금 정부는 모두 너무 부패했어요. 다 뇌물주고 자리를 산 사람들이예요."

"우리는 정상적인 일자리와 자유를 원해요."




아르메니아 민주화 운동, 2018년 4월 25일, 수도 예레반 공화국광장, 시민들은 그들이 원하는 총리가 선출과 내각이 구성될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표정은 간절해보였고, 이제 원하는 것을 얻을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가득해 보였다.  


"오늘 저녁에도 시위가 있나요"

"네"

"또 왜요? 총리는 물러났다면서요?"

"의회가 문제예요.우리는 현 내각의 퇴진과 새로운 총리와 내각을 원해요."  하면서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아르메니아 민주화 운동, 2018년 4월 25일, 수도 예레반 공화국광장, 시민들은 그들이 원하는 총리가 선출과 내각이 구성될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르코시안 총리는 물러났지만 그들이 원하는 사람을 총리로 선출하기까지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사르키시안 총리는 2년 연임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헌법을 개정하여 내각제로 바꾼 후 자신이 다시 총리직에 올랐다. 그가 통치하던 10년간 아르메니아에는 실업률이 증가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경제는 파탄나고, 시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젊은이들은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 그리고 일자리를 원하고 있었다.

  

    현재 시위대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야당의 지도자는 니코 파쉬니안이라는 인물이다. 40대 초반인 파쉬니안은 전직 언론인 출신으로 지난 수 년간 정부에 대항해 싸워 온 인물이란다.  곧 의회에서 새로운 총리 선출을 할 예정인데 시민들은 그가 총리직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다. 오늘 시위는 새총리 선출을 앞두고 파쉬니안의 총리 선출을 압박하기 위한 시위라고 했다.

 

    광장은 지금 자유와 민주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오늘 아르메니아의 푸른 하늘이 유난히 더 푸르게 보인다.



아르메니아 민주화 운동, 2018년 4월 25일, 수도 예레반 공화국광장, 시민들은 그들이 원하는 총리가 선출과 내각이 구성될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성공을 빌어주면서 광장을 떠나온다. 오늘 가르니신전에 다녀올 예정이다.  

---  가르니 신전과 게하르트 신전 그리고 예치미아진까지 다녀오니, 저녁 8시가 넘었다.


    광장에는 오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오전보다 훨씬 열기가 더해지고 있었다. 이미 본 시위는 끝났지만 시위대는 해산하지 않고 광장과 거리 곳곳에서 소규모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시위대는 광장으로 진입하는 차량을 막아섰고, 부부잘라를 불어댔다. 곳곳에서 차량을 막아선 시위대와 차량 운전자 사이에서 시비가 붙는 모습도 보였다. 차량의 경적소리, 부부잘라소리, 시민들의 함성소리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메니아의 베레모 부대. 다행히 시위대와 군,경찰과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낮에 본 베레모 부대가 떠올랐다. 지난번 시위에서 이미 7명이 체포되었다는 말을 들어서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으례껏 흘러가는 시위의 시나리오가 그려졌던 것이다. 군중이 모이고 경찰은 해산하라고 경고를 보내고, 그래도 흩어지지 않으면 강제진압이라는 정해진 패턴 말이다. 하도 한국에서 많이 보아온 광경이라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다행히 오늘 시위에서는 큰 불상사는 없었던 듯 하다. 그럼에도 중심가 곳곳에서 보이는 경찰 인력들과 약간 흥분한 군중을 보니 떨리는 마음을 누룰 수가 없다.


    그러나 시위대가 위험할 것이라는 것은 전혀 나만의 기우였다. 그들은 끝까지 평화로웠고 질서를 유지하였다. 한 청년은 전철역을 물어보는 나에게 자기도 근처에 간다며 함께 동행까지 해주는 친절함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에게 ‘꼭 승리하라'며 V자를 그려보였고, 그는 '잘가라'며 웃어 주었다. 그 청년의 미소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청년이 알려준 전철역은 매우 혼잡했다. 밤 10시가 넘어 광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린 것이다. 그럼에도 전철역은 전혀 무질서하지 않았다. 얼굴은 여전히 상기되어 있었지만 평온하게 웃으며 대화하며 귀가를 서두르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2년 전 광화문 광장의 우리의 모습과 똑닮았다. 그래서 괜시리 마음이 가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솟아났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분노하고 절망했던가. 우리가 분노와 절망을 극복하고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듯이, 아르메니아 인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그들의 신이 들어주기를, 여행자에 불과하지만 나도 그들에게 마음으로나마 힘을 보탠다.  


PS. 여행에서 돌아와 뉴스를 확인해보니 니코 파쉬니안은 총리 당선에 실패하였다. 과거 집권당인 공화당에서 반대표가 많아 과반을 넘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28일 다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놀란 공화당은 파쉬니안 총리 반대를 철회하고, 누구든 의회 1/3의 추천을 받는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오는 5월 8일 총리선출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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