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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리 Aug 11. 2023

악의는 없을 거야

더 꼿꼿한 사람이 되기 위한 나만의 주문 되뇌기

집단의 장에 속하다 보면 늘 지각을 하거나, 숙제를 해오지 않거나, 재시험에 걸리거나, 책을 가져오지 않는, 그러니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꼭 한 둘씩은 있다. 항상 챙길 거 챙기고, 할 거 다 해오는 아이들 말고, 할 것만 해오는 똘똘이들 말고, 중간보다 아래의 아이들을 "으이구"라고 칭한다. 내가 일에서 스트레스받는 원인을 찾아보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위와 같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 약간의 상처와 스트레스를 누적해서 받고 있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을 깨닫게 된 후 처음에는 벌칙을 정해 봤다. "지각을 하면, 단어는 남아서 종이로 치는 거야(우리는 원래 어플로 친다)." 내지는, "책을 가져오지 않으면 앞에 나와서 무반주로 춤추는 거야"라는 식의 재밌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곤욕인 그런 것들로 말이다.


생각 외로 분위기가 좋은 반에서는 일들이 잘 풀렸고, 잘 풀리고 있다. 연필도 깎아 다니지 않던 아이가 이를 꽉 깨물고 삼색 볼펜을 들고 다니고, 문법 노트가 없어서 책 뒷부분에 필기를 하던 아이가 가방에 문법 노트를 챙겨 오기 시작했다. 정말 바보같이 몰랐던 사실은 이런 문제아들에도 단계가 나뉜다는 점이다. 이렇게 술술 잘 넘어온 아이들을 1단계 으이구들인데, 1단계는 잘 처리가 된 셈이다.


물론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 그런 일들(약속을 지키지 않는 등의)을 사소하게 여기고, 다음에 안 그러면 되지, 하는 대인배들과 나는 다르다는 사실이 마음에 제일 걸리기는 한다. 처음에는 참고 참다가, 그런 마음들이 화딱지로 앉게 되어 결국에는 "얘가 나랑 해보자는 건가" 싶은 2단계 으이구들부터는 내가 다루기에 아직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마음속이 좁디좁은 내가 이런 상황 속에서 2단계 으이구들을 향해 속으로 되뇌는 말이 있다. 


"그래도 얘가 나한테 악의는 없을 거야."


이 아이가 싸가지는 없을지언정 나에게는 악의가 없을 거라고, 단순히 '공부'에 흥미가 없다거나, 같이 노는 친구가 좋다거나, 엄마의 말이 싫은 사춘기가 왔기에 조금 삐뚤어진 것뿐이지 나한테 악의를 가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순간 생각해 본다. 이 아이를 악마로 보다가 순진한 '아이'로 바라보면 높아졌던 혈압이 조금은 내려가는 것 같다.


사실 이런 아이들을 보고 혈압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기분이 나빠졌다가 좋아졌다 하는 건 내 성격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각종 호르몬들이 휘몰아치는 학창 시절에 나는 유독 상처를 많이 받는 성격이었다. 겉으로는 당찬 척했지만 그때는 모든 아이들이 나에게 화살을 꽂아 내리는 것 같았고, 그런 상처받는 일들 속에서 친구들의 화살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한테는 '악의적인 의도'처럼 보였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악한 친구들은 아니었는데, 나한테 너무 크지 않은 사소한 이슈들 밖에 없었던 거 같은데,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는 지금 돌이켜 보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여럿 생겨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들이 생긴 원인을 마음대로 악의적인 의도로 해석했다가 곱씹으며 혼자 다시 상처를 받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해 왔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다. 굳이 '악의'가 없었을 사람들의 의도를 '악의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 사소한 것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 화살의 근원지가 아이들이 되어버린 셈이다.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위한 신뢰를 저버린다고 생각하고, 나는 상처받고, 불안해하고, 증오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를 '감히' 함부로 생각한다고 자기 과다방어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받지 않아도, 여기지 않아도 될 상처들을 굳이 굳이 흔적을 내면서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자유롭지 않은 생각들로 아이들을 마주하게 되니까 마음이 온전치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오락가락했던 걸까)


어렸을 때든(그래봤자 10년 전이다), 지금이든, 그 아이들이 어떤 의중으로 나를 함부로 대하는지 내가 판단할 거는 아니고, 해서는 안 되고, 적어도 그들이 나에게 생각하는 바가 무엇이든, 그들은 나에게 '악의'는 없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10년 전의 나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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