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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리 Apr 26. 2024

퇴사 소식을 남들에게 알리기 무섭습니다.

곧 부부, 같이 일해요 (21)

안녕하세요. 어쩌다 보니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같이 퇴사를 결심하게 된 학원강사 커플입니다.

아직 퇴사를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생각정리할 것들이 많아 당분간은 계속 퇴사와 관련한 글들을 올릴 거 같습니다. 사이사이 프러포즈나 신혼여행 같은 것에 대한 글도 올려보려고 합니다.


저는 퇴사를 하게 되면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니고, 족쇄에서 풀렸다는 사실을 주변인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에, 실제로도 그럴 줄 알았어요. 하지만 '퇴사 선언'이라고 해봤자 회사 원장, 부원장님, 가족을 제외한 지인들은 아무도 모르는 익명의 브런치 속에서만 신명 나게 떠들고 있습니다. 막상 말을 하려고 하면 꺼려지는 부분이 몇 있더라고요.


직장인이다 보니 지인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경조사는 얼굴 마주 보고 얘기를 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라서 시간이 지나고 차차 만날 일이 생기면 그때 큰 소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연락으로 주고받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 이유는 자랑할 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힘들었던 생활을 청산하는 것은 맞지만 그다음 단계가 어떤 레벨의 고난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이전 글들에 있듯이, 당분간은 놀겠지만 다시 새로운 조직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눈앞에 당도해 있잖아요. 나를 위해서 쉬는 일인데 남들한테 증명할 필요가 없잖아요.


예전부터 중요한 소식을 전할 때면 저도 모르게 타이밍을 전하고 마음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있어요. 이를테면 친구들한테 결혼 날짜 소식을 전할 때도, 결혼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었지만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는 소식은 처음 듣는 친구들에게 아주 서프라이즈로, 제 말로 천천히 전하고 싶었어요. 문제는 그런 얘기를 자주 해본 사람이 아니라서 쉽사리 타이밍을 못 잡겠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이 먼저 물어보길 유도하고 대답을 해주는 형식으로 끝냈습니다. 기회만 엿보다가 아직 못 전한 친구들도 많고요.


물론 성격 차이도 있는 거 같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저는 활발하다가도 정작 제 이야기를 잘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축하받는 자리를 부끄러워하는 경향도 있고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가장 큰,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은연중에 포기를 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남아있었어요. 제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조금 더 하지, 그걸 포기해?'라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수고 했다의 말이 진심으로 들리지 않게 될까 봐 걱정하고, 시뮬레이션해보고, 어떤 소식으로 전할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결국 저의 소심한 성격이 가장 큰 작용을 했습니다. 사실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보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내가 좋을 대로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싶지만, 제가 지금껏 사람들을 대한 것을 생각해 보면, 조금 불신이 많은 성격이거든요. 인간관계에서 데어보기도 하고, 저는 최선을 다 했지만 그 사람이 아니었던 적도 있고.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온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별 거 아니었던 적이 더 많기는 했지만, 아직 사람을 대하는 것에 조심스럽고 제 마음속에 벽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인간관계에 트러블은 중학생 시절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는데 그때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의 틀을 깨어 준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서비(남자친구)의 동생이 하루는 저한테 밥을 먹다가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언니, 친구들한테는 결혼식 날짜 잡혔다고 말했어요? 저 같으면 진짜 완전 애들 다 불러놓고 경사니까 잘 들어, 이 언니 시집간다!! 이렇게 시끌벅적 떠들고 싶은데!!!!"


그래, 사실은 그래서 이미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온 것 아니겠어? 저 혼자 벽을 그으면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저에게 그런 얘기를 하더라도 저는 응원의 말만 건네지, 비난은 절대 하지 않을 거 같거든요. 결국에는 제가 제 스스로에게 전하는 불신의 말에다가 친구라는 가면을 씌워서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못난 생각을 깨워 준 서비 동생에게 너무 고마워요.


그래서 오늘 밤에 만나는 전 직장동료들에게 먼저 얘기해 보며, 퇴사 선언을 해보려고 합니다. 너무 깊이 고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해보려고요. 조금 과장도 보태어서요. 어땠는지는 다음 주 글에서 이어서 얘기해 보려고 해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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