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부부, 같이 일해요 (21)
안녕하세요. 저희는 퇴사 선언을 한 지 4일 차가 되었습니다. 원래 밤에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든다고 하잖아요. 요즘 저는 밤마다 은근한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고민이 생기면 보통 서비(남자친구)에게 많이 털어놓는데요, 어젯밤에는 카톡을 하다가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확실히 스트레스는 적어졌어. 다른 쪽의 스트레스가 생겼지만."
결국 새로운 고민과 스트레스가 오더라고요. 경제적인 뒷받침이 든든하게 되어주면 몰라도 살아가면서 나를 평생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 이런 책임감에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새롭게 생겨났습니다. 왜냐하면 퇴사 후에는 별다른 소득 없이 지금 모아둔 돈으로만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잠깐 쉬는 것이지, 그 쉬는 동안에도 일을 안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대출 이자도 내어야 하고, 생활비도 써야 하는데, 서비는 있는 돈으로 까먹고 탕진해서 다른 일자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있는 돈은 투자비로 쓰고 생활비는 조금이라도 벌 예정이라는 얘기를 했어요.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원하는 것은 일 없이 노는 거였고 그게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는 없겠지만 평소의 습관대로 할 수 있는 한 회피를 하려고 하더군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돈을 안 버는 상태가 좋다고 최면을 걸고 있었어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이유는 삶을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으로 윤택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인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그냥 칙칙한 색깔로 인생을 사는 거랑 똑같잖아요.
퇴사를 하면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가 당연히 사라지니 마음도 편해지고 기분도 조금 나아질 줄 알았는데 결국 다시 이런 미래에 대한 조금 더 깊은 고민이 시작되더군요. 순간 '넘사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넘사벽'의 '사'가 무엇을 줄인 말인지 고민을 하다가 검색을 해보았더니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을 줄였더라고요. 우리는 삼차원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은 결국 4차원을 넘어가야 있다는 소리입니다.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으로 또다시 회피하려 했으나 현실을 직시했더니 결국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나에게 주는 시련과 압박감을 잘 다룰지가 관건이 되었습니다. 우선 '인정하고 직접 대면하기'가 필요한 순간이 왔습니다. 회피하던 현실을 돌파하는 것이요. '하루에 5만 원씩만 쓰면 (빚, 생활비 포함) 지금 있는 돈으로 얼마나 연명이 가능할까?'와 같은 멍청한 질문에서 벗어나서 '노는 것도 한순간이니까, 잠깐 놀더라도 얼른 다시 회복하고 일을 하자'는 다짐 같은 걸 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고요.
그다음으로 서비랑 대화를 나누며 일정을 잡아보았습니다. 8월 퇴사 이후, 9~11월까지는 펑펑 놀거나 파트타이머로 일을 하다가 12월에 조금 휴식기를 가진 후에 1월에 다시 일상으로 회복해 보자고요. 서비는 계획형 인간이고 생활력도 책임감도 저보다 강한 사람이라서 당장 일을 그만두더라도 짧게 일을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일을 하기 싫어하는 걸 아니까 저한테는 더 놀아도 괜찮다고, 자기 혼자 일하면 된다고 했어요. 근데 혼자 노는 것보다 차라리 벌고자 하는 돈을 반으로 나누어 노동력을 두배로 늘리고 같이 보내는 시간을 늘려 보자고 했어요. (예를 들어 200을 혼자서 버는 대신, 100씩 둘이서 벌자고 얘기했어요.)
이전에는 제 스트레스가 저를 갉아먹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했다면, 이제는 그것보다 거시적이고 성숙한 미래를 그리면서 더 잘되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라는 점에서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까지 놀지 생각만 하며, 기한 없이 놀기만 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압박감이 심하더라고요. 깊은 고민 후에 현실과 타협해서 2024년까지만 놀기로 했습니다. 일단 지금의 계획으로는 그렇습니다. 25년부터는 다시 마음을 잡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 보려고 해요. 같은 직종일지, 다른 직종일지는 모르겠지만요. 또 우연히 마주한 새로운 취미가 제 돈벌이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 많이 부딪혀 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