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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수식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곧 부부, 같이 일해요 (완)

by 불리

안녕하세요, 이전 글에 이어서 약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약 4개월)


지난 1년의 기간 동안 '곧 부부, 같이 일해요'라는 부제목으로 25편의 글을 연재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내연애와 결혼에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퇴사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어요. 사랑으로 시작해 (조직과의) 이별로 끝나버리는 목차가 조금은 웃긴 형태로 보이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형태의 인생의 한 챕터가 이제야 넘어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퇴사라는 것이 아주 멀고도 높은 산이라고 인식했는데 결국 시간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주더라고요. 퇴사하고 계절이 하나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당시의 제 심리상태는 매우 불안정했고, 결국 참기만 하는 건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올해 한 선택 중 가장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빨리 조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벗어나고 나니 너무 홀가분하네요.


부제목이 바뀐 지금은 지금은 이미 부부가 된 우리, 같이 일하지 않는 우리가 되었죠. 우리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남자친구, 여자친구에서 남편과 아내가 되었습니다. 팀장이었던 남편은 이제 팀장이 아닌 그냥 집안의 제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수식어 중에서 '선생님' 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지고 나니까, 처음에는 불안할 줄 알았는데 진짜 속이 시원했습니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아야 하는 팔자일까요? 아무도 저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지 않아도 그냥 저로 살아갈 수 있더라고요. 하지만 다른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을까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습니다. 대리, 팀장 이런 호칭이 아니더라도, 또 다시 조직에 편입되어야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 막연한 불안함을 가지고요. 언젠간 이런 생활이 끝날 거니까요.


하지만 당분간은 이 삶을 지속해 보려고 합니다. 수식어가 꼭 있어야지만 살아야 하는 이 각박한 사회 속에서, 가끔은 수식어가 없는 그냥 나, '불리'라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이요. 누군가 절 불러주지 않아도 저는 저만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거요.


어제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이제 인생을 잘 개척해 나가볼게" 라고 했더니 "그래, '잘'은 빼고" 라는 말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인생은 흘러가는 거지, 잘 개척해 나갈 필요 없다고, 너무 전전긍긍하며 애쓰며 살 필요 없다고, 그냥 무탈한 하루가 가장 좋은 거라고 얘기해 주는 부모님이 있어 참 든든하더라고요.


2024년은 다사다난하게 흘러갔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소용돌이치는 한 해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가장 최신 버전의 챕터들이 더욱 기대되는 한 해였습니다. 이번 챕터는 여기에서 마무리 해보려고요. 글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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