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엄마의 뜨개질
신화 속 시지프스는 신들의 미움을 사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라는 형벌을 받는다.
힘겹게 산꼭대기에 도달한 순간, 바위는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스는 또다시 온 힘을 다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똑같은 노동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바위를 굴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시지프스.
엄마는 요즘 뜨개질에 취미를 붙이셨다.
정신이 온전했을 때는 역동적이지 않은 일이라 관심 밖이었던 취미이다.
엄마는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실 정도로 바쁘게 살아오셨다.
치매에 걸렸다는 걸 아시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바쁘게 사셨을 정도이다.
돈 관리를 잘못해 손해가 나기 직전에 우리가 알고 은행통장과 카드를 압수하자 엄청 서운해하셨다.
부엌일 등 갑자기 살림을 놓아버리게 되자 워낙 바쁘게 사셨던 분인지라 무척 허탈해하셨다.
치매에 걸린 지금,
일중독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빨래 개키기나 마늘 까기 등을 부탁드리면 아까운 과자를 야금야금 베어 먹듯 하며
마치 소중한 의식을 치르듯 경건한 자세로 그 작업에 임하신다.
앉아서 뜨개질이나 하는 한가한 사람 아니라던 엄마가 소파에 앉아 한올 한올 털실을 짠다.
증손녀에게 입힐 스웨터라고 하니 사뭇 진지하게 정성을 들여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정성 들여 짜고 있는 스웨터는 엄마가 자리 비운 사이에 내가 재빨리 풀어버린다.
준비해 둔 털실에 비해 엄마의 작업 속도가 워낙 빨라서 하는 짓인데,
어차피 엄마의 시간 때우기용으로 짜던 어설픈 결과물인지라 미련 없이 풀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엄마는 자리에 돌아와 다시 뜨개질을 하시는데 아까 꽤 많이 떠놓았다는 걸 기억 못하신다. ㅠㅠ
시지프스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렇게 무의미한 일을 늘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열심히 뜨개질하시고
나는 그걸 풀어버리는 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고 있다.
엄마가 애써 뜨신 작품을 풀다 보면 시지프스의 바윗돌이 떠오른다.
나는 시지프스에게 형벌을 내린 신들의 하수인쯤 되나 보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