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가신 엄마
엄마 돌보기에 지친 우리 형제들은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합의했다. ㅠ.ㅠ
내가 치매 엄마 모시기가 너무나 힘들다고 계속 징징대자
직장 다니는 다른 형제들이 그리하자고 의견을 모은 것이다.
"그래 언니, 그동안 고생 많았어. 사실 형부 보기도 미안했고."
그렇게 합의했건만 적당한 요양원 찾기가 쉽질 않았다.
작년에 새로 생긴 건강보험협회 부설 요양원은 시설이 좋은 대신 경쟁이 치열해서
입소할 때는 추첨까지 했다고 한다.
가서 보니 과연 시설도 좋고 협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입소한 어르신들에 대한 대우도 좋을 것 같았다.
접수해놓고 보니 순서가 300번이 넘었다.
앞으로 몇 년을 기다려도 차례가 올지 말지 의문이다.
그래서 그곳은 포기하고
쾌적하고 친절한 요양원을 찾고 있었는데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직장 옆 요양원에 자리가 하나 났으니 엄마를 그리 모시자고 말이다.
서울 한복판에 있어 동생집에서도 가깝고
무엇보다도 노인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따뜻해 보여 마음 놓인다는 것이다.
나는 동생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 봐 얼른 엄마를 모시고 달려갔다.
요양원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밝아보였다.
직원들도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러나 요양원을 둘러보면서 노인들 얼굴을 보니 밝은 표정이 아니다.
그렇다고 침통한 얼굴도 아닌,
무표정한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엄마가 계실 방을 찾아가서 함께 지내실 어르신 세 분과 인사했는데
그분들도 표정이 없다.
그에 반해 엄마 얼굴을 보니 밝고 천진난만하다.
엄마는 뭔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인지 불안해하셨지만 생글생글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제가 이래 봬도 힘은 좋아요. 뭐든 잘 할 수 있어요."
팔을 번쩍 들어 알통을 만들어 보이는 엄마를 보고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오는 동안 차 안에서 혹시라도 엄마가 입소를 안 하겠다고 떼를 쓰시면 어쩌나 싶어
엄마를 세뇌시켰던 것이다.
지금 가는 곳은 이제부터 엄마가 살 집인데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할머니들이 아주 많지만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것.
그러나 엄마는 겨우겨우 백을 써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만약에 안 들어가겠다고 하면 다시는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엄마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신다.
나는 돈이 들어가기는커녕 엄마가 거기 있으면 나라에서 우리에게 돈을 준다고 뻥쳤다.
그러니까 엄마는 앞으로 일할 곳의 면접을 보는 중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ㅠ.ㅠ
(엄마는 데이케어에 다니시면서도 이렇게 놀고 먹을 때가 아니라고,
어디 가서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입소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엄마는 옷도 갈아입고 식사까지 하시는 중이라고 했다.
입소절차를 마치고 인사하러 엄마가 계신 방으로 올라갔다.
"엄마, 토요일에 올께~"
나는 애써 밝은 얼굴로 엄마한테 인사했는데
엄마의 표정이 갑자기 돌변했다.
나를 꽉 붙잡고 집으로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엄마를 끌어안고 가면서 나한테 얼른 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처음엔 다들 그러세요. 이 순간만 넘기면 잘 지내시게 되니까 걱정 말고 가세요."
결국...
엄마도 나도 울음이 터졌다.
엄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어린아이처럼,
나는 우리를 키우느라 힘들었던 엄마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드셨다.
나도 엄마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져있었다.
엄마를 보면서 짜증냈던 일도 후회가 되었다.
치매 엄마 때문에 여행도 마음대로 못 가고
일상적인 약속도 잡지 못했던 원망도 사그라들면서
이렇게라도 엄마가 살아계시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다음날,
엄마를 평소대로 주간보호센터에 보내드리고는
미리 예약되어있는 장충체육관으로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를 보러 갔다.
엄마를 요양원에 입소시키면
이제부터 여행도 아무때나 마음대로 갈 수 있고,
엄마 때문에 허둥지둥 돌아오는 일없이 늦게까지 하는 공연도 보면서 자유로워지겠다고 기대했었다.
그러니까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고 나서 첫 번째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불효자는 웁니다'였던 것이다. ㅠ.ㅠ
엄마가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오실 시간에 맞춰
악극을 끝까지 보질 못하고 빠져나오면서
그래도 나는 주인공 이덕화처럼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마음 쓸어내렸다.
PS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날의 애잔한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자꾸 일을 저지르는 엄마가 미워 죽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