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 엄마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사양 斜陽'에 가쯔코의 어머니인 귀부인에 대한 묘사가 상당 부분 나온다.
우아하고 기품있는 이 귀부인의 식사하는 모습을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정통예절과는 살짝 다르지만 어딘가모르게 더 품위있고 예의있어 보인다는 귀부인의 행동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와서 엄마가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 귀부인이 생각난다.
전후 몰락해가는 일본 귀족의 우아한 귀부인과
치매에 걸려 사람도 못알아보는 엄마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생각한다고
저수지 물에 빠져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가 알게되면 화가 나서 걸어나올지도 모르겠다.
예전의 엄마는 식탐하는 사람을 가장 경멸했었다.
우리가 뭐 뭐 먹고싶다고 하거나 사달라고 조르면 식탐이 가장 점잖지못한 행동이라고 야단쳤던 생각이 난다.
식욕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인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식사하는 모습이 잘 떠오르질 않는다.
함께 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에도 국을 뜨거나 생선을 발라주는 등의 모습만 생각날 뿐이다.
아마도 엄마는 당신의 배를 주려가면서 배고픈 자식들 걷어 먹이는게 더 먼저였는지 모른다.
식탐 경계 운운 하시면서도 속으로는 자식들에게 실컷 먹이지못한 안타까움이 더 컸을 것이라는걸 이제야 알겠다
아무튼 엄마가 치매에 걸려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음식을 드실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그제사 엄마의 식사하시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었다.
엄마가 저렇게 우아하게 밥을 드셨나 싶게 수저를 들어 입안에 흘리는 행동이 예사롭지가 않다.
어느날 식탁에서 엄마가 닭고기를 드실 때
아~! 하고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 떠올랐다.
가즈코의 어머니인 귀부인이 닭고기의 뼈있는쪽을 손으로 살짝 집어들고 입으로 뼈와 살을 갈라 먹으며 시치미를 뗀다는 부분 말이다.
치매에 걸려있는 지금에야 엄마는 식탐을 경계하는 우아함은 생각하시는 걸까?
병원에서도 그렇고 요양원에서도 치매노인을 대할 때의 행동에 대해 기분 상한 적이 많았다.
처음보는 팔순 노인에게 사오십대의 젊은 사람이
"할머니~ 아침 드셨어?"
"이건 이렇게 하셔~"
하면서 반말 비슷하게 대하는 걸 보면
친근하게 말을 걸기 위한 것이겠지 하면서도
노인의 자존심을 좀더 헤아려줬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노인복지의 전문가가 아니고 인력부족이 심각하다니 뭐라 할말이 없지만
아무튼 치매엄마를 우아한 귀부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건 무리한 내 욕심일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나부터 엄마를 귀부인처럼 대해야 할텐데
일을 저지르는 치매엄마에게 화가 나서 소리부터 꽥! 지르는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