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Sep 29. 2015

엄마의 전성시대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아버지와 우리 다섯 남매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일 뿐이고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했다. 아마도 그 시절의 다른 엄마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그렇게 살았을 테지만 엄마의 경우는 특히 심했다.
언제나 다른 사람 인생의 조연 역할을 하던 엄마가 오롯이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된 것은 치매에 걸린 이후가 된 셈이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역량이 떨어져서야 우리에게서 벗어난 엄마는 평생  동안해 오던 일을 못하게 되니 몸살이 날 지경인가 보다. 뭔가 하 해야겠는데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항상 불안해한다. 안절부절못하며  왔다 갔다 배회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노인네가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저렇게 돌아다니니 보호자가 얼마나 힘이 들겠냐고 말하지만 그건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니 개의치 않는다.


매일 다니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엄마는 꽤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몸에 밴 부지런함, 그리고 누군가를 도우려는 봉사정신은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자동으로 행동에 들어간다.

다른 노인이 도움을 요청할 때 요양보호사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휠체어를 끌어주는 등 재빠르게 행동해서 요양보호사들에겐 일을 저지르는 골칫거리였지만 동병상련의 노인들에겐 나름 백의의 천사가 되기도 해서  요양보호사보다 엄마를 먼저 찾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주방일을 기웃거리는 것도 엄마로선 당연한 일이다. 주방 아줌마들이 일을 하고 있으면 저절로 손이 뻗어나가 일을 하고 싶어 하시니 그 사람들로선 일하는데 걸리적거리는 방해자에 불과하지만 가끔 파 다듬는 일을 부탁드리면 깔끔하게 처리하시더란다. 일을 했다는 성취감에 엄마는 행복하셨겠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왜 편히 쉬지 못하고 늘 일을 해야만 하는가 말이다.

지금은 엄마가 무슨 일이라도 할라치면 기겁을 하고 쫓아가서 빼앗아버리니 아마도 주간보호센터에서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엄마는 일을 도우는 거라고 하지만 우리로선  그 뒷감당을 수습해야 하는 저지레가  되니 전혀 반갑지가 않다.

이제 정말 일을 할 수 없게 된 엄마에겐 왕성하게 일을 할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의 추억과 함께 무력감만 남았다. 

작년쯤엔가 저녁에 엄마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요양보호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들한테 제일 인기 많으세요. 인물 이쁘시죠 맘씨 착하시죠, 요즘 우리 할머니는 금값, 아니 다이아몬드 값이에요."


생각해보니 그때만 해도  엄마의 정신이 지금보다는 좋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한참 인기가 치솟았던 작년이 엄마에겐 전성시대였을까? 파를 다듬는 일이라도 할 수 있었고, 누군가의 휠체어를 끌어주어도 질책보다는 고맙다는 인사도 들을 수 있었으니까. 우리에게는 평생 동안을 해도 당연한 일이라고 받을 수 없었던 감사인사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평생 우리를 위해 근면 성실하게 살아온 엄마에게 이제 제발 좀 자신만을 위한 에고이스트로 살아달라고 애원하는 건, 그러니까 엄마를 괴롭히는 일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엄마의 행복을 방해하고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우리는 평생 동안 엄마를 괴롭혀오고 있나 보다. ㅠㅠ







매거진의 이전글 패륜의 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