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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Oct 20. 2015

할머니는 꽃미남을 좋아해

노치원에 간 엄마

엄마가 노인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어린이집처럼 노인들을 낮시간 동안 돌봐 드리다가 저녁에 집에 모셔다 드리는 곳이라고 해서 일명 노치원이라고도 부르는 노인주간보호센터는, 나 같은 치매노인 보호자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곳이다.  요즘처럼 나라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던 적도 전에는 없었다.

그동안 높게 책정된 건강보험료 때문에 억울했던 적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앞설 정도이다.

아마도 치매 걸린 노인을 가족만이 책임지고 돌보라고 한다면  제 부모를 어쩌지 못해 형제간에 난리가 날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치매부모를 서로 떠맡기느라 다투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제도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요즘은 웬만한 동네마다 노인주간보호센터가  있어 치매환자 가족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 특히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긴 이후에 많이 생겨났는데 건강보험공단의 보조가 없다면 운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요양보호사를 필요로 하기에 일자리 창출에도 한몫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도 조금 편해진다.


엄마가 처음 노치원 가셨던 곳은 집에서 가까운 상가건물에 있었다. 워낙에 활동적이었던 엄마는 가만히 집에 앉아 계시는 걸 싫어하셨기에 수월하게 보내드릴 수 있었다. 유치원 가지 않겠다고 울며 떼쓰는 아이들이 있는 것처럼 노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거부해서 보호자를 애 먹이는 치매노인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아무튼 엄마는 나름대로 즐거운 노치원 생활을 하시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노치원 원장과 싸웠다며 안 가겠노라고 버티셨다. 그곳에서 뭔가 엄마의 심기를 건드렸나 본데 그때만 해도 엄마와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했었나 보다. 지금 같으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무조건 차에 태워 보내드렸을 텐데 그때만 해도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의 취향에 맞는 다른 곳을 같이 알아보자고 노치원 투어를 했다.

여러 곳을 방문하고 알아봤지만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싫다고 하셨다.

슬슬 짜증도 나고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침 우리 아파트 앞에서 치매노인을 모셔다 드리러 온 요양원 차를 발견했다.

차에서 내려와 노인을 모시는 요양보호사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찌나 극진한지 한참 쳐다봤는데 엄마도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  쟤랑 놀 거야~"


그렇게 해서 엄마는 그 노치원에 다니시게 되었다.

시설은 다른 곳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그저 그런 곳이지만 엄마의 마음을 이끌어낸 요양보호사는 달랐다.  한마디로 오지랖 넓은 교회 오빠 스타일의 젊은 청년인데 내가 보기에도 노인을 대하는 마음에 진정성이 보였다.

가끔 노치원에 가보면 노인들과 재미있게  놀이하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언젠가 무슨 얘기 끝에


"...  그래서 제가 할머니께 배울 점이 많아요.  정말 존경하고 있어요."


세상에~  치매노인을 존경하고 있다니...

진심이 담긴 청년의 맑은 얼굴을 보면서 무조건 신뢰가 갔다.

엄마도 청년 요양보호사를 칭찬하고 좋아하셔서 우리는  할머니도 꽃미남을 좋아하시네~  하면서 놀렸다.

전에 다니던 노치원의 요양보호사가 중년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노인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인지가 떨어지고 판단력이 흐려진 치매노인들이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고 염려해주는 사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려 좋아하고 따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도 잘 지냈던 그 꽃미남 요양보호사가 멀리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고향에 있는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며 엄마랑 헤어지면서 무척  안타까워했는데, 아마도 다른 노인들 한분 한분마다 그렇게 작별인사를 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가장 이상적인 요양보호사가 아니었나 싶어 엄마를 맡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이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그 청년의 돌봄을 받는 노인들은 복 받은 사람들일 게다.

지금의 요양보호사도 나름 미남인데 엄마의 구박을 받고 있다.


"걔는 어디로 가고 어디서 저런 녀석이 왔어!"


장난기 많은 지금의 요양보호사와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아침이면 빨리 데리러 안 온다고 투덜거리신다.

아마도 지금의 요양보호사와도 헤어지게 되면 많이 보고 싶어 하실 것 같다. 젊은 꽃미남이니까.

실제로 엄마는 젊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이라도 만나면 무슨 말이건 걸고 싶어 하시는 표정이 역력하다.


엄마의 사람들과의 친분관계는 치매에 걸리기 전과 걸린 후로 나눌 수 있겠다.  

이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지고 이제는 동물적인 감각으로만 호감과 비호감을 구분하는데, 어쩌면 지금의 관계 맺는 기준이 더  순수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요즘 들어 엄마가 귀찮고 싫어지는 내 마음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것만 같아 순간 순간 움찔하곤 한다.

어쨌든 치매 엄마를 존경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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