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이모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엄마와 둘이서만 여행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처음인 것 같다.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었다면 사정은 좀 달랐을 것이다.
아무튼 서울역에서 엄마와 함께 ktx를 타고 이모가 사시는 진주로 향했다.
약 30여 년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적이 있는 이종 사촌오빠가 우리를 마중 나왔다.
서로 옛날 모습 그대로라며 인사를 하다가 깔깔 웃고 말았다.
얼마 전 고등학교 교장 퇴임을 한 오빠나 환갑을 맞은 나나 청춘시절에는 바빠서 만날 엄두도 못 내다가 각자의 엄마들 덕분에 만난 셈이다.
엄마와 이모도 약 10년 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혼자 여행하기가 힘들게 되면서부터 일 것이다.
서로 통화만 하면서 그리워하는 자매를 직접 만나게 해주자고 약속하고서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다가 이제야 실행에 옮기게 되었는데 너무 늦어 죄스럽기만 하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이모를 보더니 낯선 이웃 할머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모님도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나도 마음이 울컥했다.
치매 걸린 엄마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이모님도 몇 번의 수술로 인해 거동도 어렵고 잘 드시질 못해 뼈만 앙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얘기를 나누는 두 분을 바라보려니 겨울이 되기 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숙제를 해치우자는 기분으로 집을 나서긴 했지만 이렇게나 절절한 줄 알았더라면 더 일찍 서둘렀을 것이다.
이모가 앨범을 꺼내오셨다.
약 20여 년 전에 엄마와 둘이 미국 여행 갔던 사진들이었다.
각자의 아들들이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때라 아들 잘 키워냈다는 자부심과 긍지로 가득했던 시절이다.
지나고 보니 이때가 두 분의 전성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아들 딸 잘 키워 결혼시켰고 손자들도 잘 자라고 있고, 경제적으로나 시간도 여유 있어 함께 해외여행 자주 다니실 때였다. 건강도 따라주었으니 뭘 더 바랐겠는가.
이제는 돈이 아무리 많고 시간이 남아돌아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한 사람은 치매로 정신이 부실하고 또 한 사람은 몸이 부실하니 둘을 딱 합친다면 모를까 온전한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두 분을 바라보면서 정신이 더 먼저일까 육신이 더 중요할까 한참 생각해본다.
영육이 함께 건강할 수 없다면 그래도 정신이 더 건강하신 이모님이 부러웠다.
비록 하루 종일 누워 계셔도 나와 대화할 수 있고 추억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이모님이 더 좋아보이니 아무래도 그동안 엄마 때문에 많이 지쳐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