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가 생각나는 밤이다.
성격파 배우 안소니 퀸이 주연이었던 에스키모인 소재의 영화였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검색을 해보니 ‘야생의 순수’란다.
원래 제목은 ‘The Savage Innocents’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잘 생각이 나질 않는데 몇몇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추운 겨울이 되어 양식이 떨어지자, 함께 살던 노모가 자발적으로 집을 떠나 눈 쌓인 벌판에 버림을 받는다. 그대로 두고 오면 얼어 죽어서 곰의 먹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젊은 부부는 마치 의식을 치르듯 어머니와 작별을 하고 매서운 눈보라를 등진채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었다.
이후 아기가 태어나자 치아가 하나도 없다며 안락사시키려는 남자와 울며 매달리는 여자를 보면서 노모가 있었다면 저런 해프닝이 없었을 텐데 하며 피식 웃기도 했다.
멀리서 손님이 오면 아내를 내주어 접대를 한다는 장면이 식상할 정도로 노모를 버리고 오던 장면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있었는데, 요즘 자주 생각나는 것을 보면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인가 보다.
약 2년 넘게 우리 집에 와계셨던 엄마가 결국은 요양원에 입소하셨다.
중증 치매에 고관절 수술까지 받으신 엄마는 누군가가 하루 종일 옆에 붙어있어야만 생활이 가능하다.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다지만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오롯이 내가 케어해야 한다.
게다가 주말이면 다른 형제 집에 가 계시던 것도 곤란하게 되었다.
아기가 있는 그 집에서 엄마가 강아지 먹이를 아기 입에 넣어주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다는 사건이 있은 후로 주말에도 내가 떠맡게 되었다.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해야만 하는 결정적인 핑계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나에게 첫 번째 손녀가 생겼는데 직장엘 계속 다녀야 하는 딸을 대신해 육아에 전념하려면 엄마를 요양원에 맡기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야생의 순수'에서 안소니 퀸 부부가 눈보라 휘몰아치는 벌판에 노모를 버리고 오듯이 엄마를 요양원에 맡기고 나오는 날,
하필 눈이 펑펑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아기의 이가 하나도 없다고 낙담하며 옥신각신하던 젊은 부부의 모습에 썩소를 날리던 내가 아기를 안고 어르고 있다.
안소니 퀸 부부가 새로 태어난 아기를 얼싸안고 좋아했듯이 우리 집은 새 생명으로 인해 활기가 넘치고 웃음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노인의 퀴퀴한 냄새가 배어있던 방에서는 대신 갓난아기의 달콤한 향기로 가득해졌다.
세상은 그렇게 세대교체가 되어가는 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