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치매 판정받기 작전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하신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요양원에 처음 입소하셨을 때는 이틀이 멀다 하고 엄마에게 다녀왔다. 집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어떨 땐 하루에 두 번씩 간 적도 있었다. 요양사들은 좋은 말로 효녀라면서도 귀찮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는데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집에 계실 때보다 더 극진한 마음이 우러나서였다.
한 달 정도는 그렇게 열심히 다니다가 엄마가 요양원에 완전히 적응하신 두 달째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방문이 줄어들었다. 엄마도 그 사이클을 느끼는지 한 닷새만에 가면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하면서 농담까지 하신다.
옆에서 요양사가 누구냐고 물으면 지나가는 사람 정도라고 대답하면서도 말이다.
요양원에 계시게 되면서부터 안절부절못하며 배회하시던 버릇은 없어졌다. 사람이 많이 있으니 마음이 놓이는지 비교적 편안하게 앉아있는 엄마를 보면 나또한 마음이 놓이면서도 어느새 감금살이에 익숙해지신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극성스러울 정도로 왕성한 활동파였던 엄마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완연한 치매환자인 엄마와 함께 치매 판정을 받기 위해 벌였던 해프닝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많이 완화가 되어 치매 등급 받기가 수월해졌지만, 엄마의 치매 초기 때인 5년 전만 해도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받기가 힘들었다. 사실 그 시기야말로 데이케어를 가장 필요로 하는 때였는데도 말이다.
우선 비용 혜택을 받으려면 치매 등급부터 받아야 하는데 공단에서 조사원이 나와 이것저것 질문하면 평소에 비해 대답도 어찌나 똑똑하게 잘하시는지 번번이 퇴짜를 맞곤 했다.
조사원이 돌아가면 다시 나를 들볶는 치매 엄마가 되면서도 말이다.
몇 번의 심사요청 끝에 드디어 통과가 되었다. 내가 엄마에게 조사원이 나와서 물으면 무조건 모른다고 하자고, 그래야 보험회사에서 돈이 나온다고 했더니 엄마가 잘 따라주셨기 때문이다. 뭘 물어봐도 무조건 모른다고 하랬더니 나중에는 내 방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가르쳐달라고 떼를 쓰시는 여유까지 부렸을 정도였다.
그쯤에서 치매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엄마의 상태는 점점 심해져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더 이상 조사원을 속이기 위해 트릭을 쓰지 않아도 되는 3등급 치매환자인 엄마의 쇠약한 모습을 보면 씁쓸해진다.
요양원 입소가 가능한 시설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조금 더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지금 엄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며 단번에 통과되었다.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만 면회 갈 정도로 소원해졌지만,
엄마와 함께 등급 판정을 받기위해 공단 조사원을 속여가며 눈을 찡긋거렸던 그때가 새삼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