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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May 01. 2017

봄날의 문경새재

엊그제 휴일을 맞아 문경을 여행하고 왔다.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떠나는 어느 여행 카페에 가입을 해서 혼자 다녀왔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서먹함도 괜찮았다. 오랫동안 친분이 쌓여 함께 즐기는 그들과는 달리 혼자 사색하며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아까워, 혹시나 내가 심심할까 봐 배려해 가까이 오려는 사람들을 은근슬쩍 피하기까지 하며 4시간을 걸었다.
나무 내음을 맡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며 계곡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면서 숲길을 걷노라니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혼자 여행할 때 꼭 필요한 셀카봉을 휘두르며 실실 웃기도 하는 등 재미있게 걸었다.
평탄하게 잘 손질해 놓았지만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완만한 길을 걷다가 가끔 옛길로 들어 가로지르는 재미도 있고 작은 들꽃이 무리 지어 피어나 나그네의 눈을 호사시키기도 한다.
옆에선 계곡물이 따라오다가 커다란 소를 이룬 곳에 다다르기도 한다.
이곳도 그렇게 내 눈길을 끌어당겼다.
            


사진이 어설퍼서 그렇지 저 바위 아래의 수심이 꽤 깊어 보였다.
시퍼런 물의 색깔이 심상치 않아 수심을 가늠해보려고 돌멩이 하나를 집어던져보았는데 순식간에 물고기들이 모여들었다.
내가 먹을걸 주는 줄 알았나 보다. 이 깊은 계곡에서도 새우깡 맛을 알아버린 물고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돌을 던지지나 말 것을...
바위를 쳐다보며 몇 걸음 옮기다 보니 이런 안내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꾸구리 바위 -  전설에 의하면 바위 밑에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의 큰 꾸구리가 살고 있어
바위에 앉아 있으면 물속의 꾸구리가 움직여 바위가 움직였다고 한다.
특히 아가씨나 젊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걸어온 곳은 1 관문의 반대방향 조령산 3 관문서부터였으니 모든 안내 팻말을 몇 걸음 걸어야 볼 수 있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기꺼이' 희롱당한 뒤에야 바위의 정체를 알게 된 셈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요즘 내 머릿속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엄마 생각을 한나절이나마 지워보려 했는데 이 안내 팻말들을 보면서 다시 엄마를 떠올렸다.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가면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손발을 주물러 마사지를 해드린다. 하루 종일 누워있는 엄마에게는 그게 유일한 낙일 것이다. 나도 처음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나중에 후회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정성껏 마사지해드렸다.
그런데 곧 돌아가실 것 같던 엄마는 조금씩 회복을 해서 이제는 중환자실 생활만 6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위독한 엄마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외국에 나가 있던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까지 들어와 작별인사를 하고 갔지만 엄마는 좋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은 채 여전히 누워 계신다.
처음에는 하루 두 번씩 면회 가던 내 발길도 줄어들었다. 정성을 다해 마사지해드리던 손길도 심드렁해진 요즈음이다.  

반대방향에서 넘어오는 문경새재의 안내 팻말들이 실물을 먼저 보고 난 후에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엄마의 몸짓 의미를 조금 지난 나중에나 알게 되지 않을까. 엄마의 마지막 순간은 다시 돌아가 볼 수 있는 문경새재의 안내 팻말과는 달라서 한번 놓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너무나 앙상하게 말라서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손발이 너무나 그리울 것 같다. 실체가 없는 엄마보다는 이렇게라도 누워계셔서 가끔 가서 보고 만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는데 문경새재를 넘어오며 결국 엄마에게 돌아오고 말았다.
한동안 문경새재의 아름다운 숲길과 계곡이 눈앞에서 아른거릴 것 같다.

                    

문경 선유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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