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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Jul 01. 2016

요양원의 여인들

죽을 때까지 예뻐야 한다?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하신 지 여러 달이 지났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자주 면회 다니다 보니 그곳에 함께 계시는 다른 노인들과도 자연스레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다들 엄마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약 1년 전만 해도 고관절 수술받기 전의 엄마는 그분들처럼 말씀도 잘하시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종이접기도 잘하는 등 프로그램에 적극적이셨는데, 그때는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하실 거라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던 때이다.

요양원에서는 과거의 지위고하와 상관없이 현재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몸도 왜소하고 정신도 뒤쳐져 있어 다른 할머니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루라도 먼저 들어가 자리라도 잡을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이가 들면 외모고 뭐고 건강한 사람이 최고라더니 모란꽃처럼 어여쁘던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병약해져 초라한 노인의 모습만 보일뿐이다.  게다가 날씬하다 못해 나무 작대기처럼 말라버린 몸은 옷을 입어도 마치 허수아비에 옷 걸어 놓은 것처럼 흐느적거려 더 놀림감이 될 것 같았다.  요양원 분위기를 보아하니 노인들이 젊은이들 못지않게 예쁜걸 추구할 뿐 아니라  허름한 차림의 노인은 은근히 무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엄마가 치매에 걸리면서부터 실용성 위주로 입혀드렸던 옷들을 다시 점검해 보았다.

그동안 생활하기 편한 옷으로만 가져다 드렸는데 엄마 옷장에서 색상이 화려한 예쁜 옷부터 골라냈다.

그리고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필요 없을 것 같아 치워두었던 명품 모자까지 챙겨 가지고 갔다.

몇 년 전 동생이 백화점에서 비싸게 주고 사서 생신선물로 드렸던 데 엄마가 쓰면 귀부인처럼 우아하게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다. 옷보다도 그 모자를 씌워 드리니 엄마의 옛날 모습이 조금 되살아나는 것 같아 반가웠다.

요양원에 면회를 가면 우선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로비를 한 바퀴 빙 돌아오는 산책부터 시작한다.  예쁜 모자를 처음 쓰고 산책하던 날, 엄마를 보는 노인들의 눈빛이 평소와는 달라지며 관심을 보였다.

"새로 오신 분인가?"  

하면서 가까이 오는 분도 있었고,

"모자 이쁘네 " 하면서 적극적으로 만져보는 분까지 있었다.

몸은 늙고 병들었어도 예쁜걸 좋아하는 천생 여자들이었던 것이다. 

요양원에 자주 가다 보니 자원봉사자들도 가끔 만나게 되는데 이분들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 품위 있고 깨끗한 노인에게 더 눈길을 보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외모지상주의가 어쩌니 하면서 비난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의 본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다 늙어 기준이 없을 것 같은 노인들에게조차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걸 보면 자신의 외모를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제 엄마는 스스로 치장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내가 신경을 써드릴 수밖에 없는데 놀랍게도 엄마가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예쁜 옷을 입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더 집착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 유태인 수용소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쓴 글이었다.  나치군은 매일 일정분의 수용소 사람들을 골라내서 끌고 나갔는데 그 기준이 안색이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생기가 있는 사람보다 곧 죽을 것 같은 사람을 가스실로 끌고 나가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살아남은 그 사람은 깨진 병조각으로 매일 면도를 하면서 안면관리를 했다고 한다.  덕분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엄마를 포함해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에게서 불경스럽게도 그런 이야기를 떠올리다니 죄송했지만, 아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의 의욕도 잃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를 만나러 갈 때는 내 의상에도 신경 쓰게 되었다. 무조건 화려하기만 하면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내 나이에 맞는 품위까지 생각해서 오늘은 예쁘다거나 아무 얘기 않거나(그럴 땐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고 대충 입고 간 날이다 ) 하면서 엄마는 나름대로 평가를 내리셨다.


엄마의 미적 감각이 유지되고 있는 한, 엄마는 여전히 아름다운 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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