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Jan 15. 2017

자연사에 대한 생각

중환자실 풍경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숨 가빠하시며 호흡이 곤란하다고 연락이 왔다. 황급히 달려가 엄마를 대학병원 응급실로 모셔갔는데 MRI, CT 등 몇몇 검사를 한 결과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난여름에도 엄마의 폐렴으로 같은 경험을 해 봤기에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나 보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올라가는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 생각들이 오갔으니 말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내가 엄마를 돌볼 수 있지만 당장 내일부터 손녀를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가 걱정이었다. 제 에미는 요즘 회사일로 정신이 없는 것 같고, 직장 다니는 사위도 하루 정도 월차를 쓴다면 모를까 계속 아이를 볼 형편이 아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중환자실은 지정된 시간 외에는 보호자도 들어갈 수가 없단다. 오전과 오후로 나눠 하루에 두 번 면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ㅠㅠ


면회시간에 맞춰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면서, 처음엔 엄마의 상태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데 한숨 돌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거의 대부분의 환자가 노인들이란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침상에 걸려있는 여러 가지 장치들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회생하기가 어려워 보이는 노인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장치로 목숨을 연명해 나가는 것 같은데 그 모습이 무척 기이하고도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제야 엄마를 중환자실로 모셔올 때 의례적으로 서명한 동의서를 다시 생각했다.

거기에 적혀있던 기관 내 삽관이 뭔지 몰랐는데 코나 입 그리고 목부분을 절개해 연결한 관을 통해 기도를 확보해서 산소를 공급할 뿐 아니라 치료약과 영양식까지 공급할 수 있는 장치라고 한다. 한번 기관내 삽관을 하면 목숨이 붙어있는 한, 임의로 제거할수 없다고도 한다.  그러고 보니 작년 겨울 엄마가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 요양병원에 계실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옆 침상의 할머니는 식사시간이 되면 누워서 울부짖었다. 다른 환자들은 밥을 입으로 떠먹고 있는데 그 할머니는 코를 통해 죽 같은 연동 음식이  들어가고 있었다.  의식은 비교적 또렷해서 다른 사람들의 식사시간이 되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 말고도 누워서 모든 것을 감당하는 식물 같은 그 할머니를 보면서 저렇게 사는 것도 과연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 엄마가 그 할머니처럼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 암담했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혼자 힘으로 숨도 쉬고 밥도 드시면서  시끄럽다고 그 할머니를 흘겨봤었다.


형제들에게 문자를 띄웠다.

만약 엄마의 상태가 나빠져서 기관 내 삽관이나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치료가 필요하다면 동의할 것인지를 물었다. 엄마가 심폐소생술을 받는다면 안그래도 앙상하게 말라  드러나는 갈비뼈가 다 부러져 남아날 것 같지 않다면서 연명치료 반대 뉘앙스를 풍기면서 말이다. 우리 형제들은 엄마가 편하게 살아계시는 게 아니고 고통스럽게 생명을 유지만 하는 거라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하지 말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입원 전에 동의서에 서명했던 것을 다시 보여달라고 하면서 우리들의 의견을 전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는지 간호사는 거부 동의서라는 서식을 가져와 다시 서명을 받아갔다.  괜히 불효자들이라고 비난 받는 건 아닌지 눈치를 보며 움츠렀던 마음도 좀 편해졌다.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이나 박완서 작가 같은 사회적 지위가 있던 분들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한채 품위있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뉴스를 본적도 있어, 엄마의 연명치료 거부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말자고 동생들에게도 말했다 . 치매엄마를 오랫동안 보살펴온 나만이 할수있는 말이기도 했다.


엄마가 고통스러워하며 치료를 받는 동안 차라리 편한 길을 가시는 게 낫겠다고 포기하며 며칠을 보냈는데 엄마의 의식이 돌아왔다. 여전히 내가 누군지 알아보질 못하고 여기가 어디인지 인식을 잘 못하는 중증 치매환자지만 간호사나 옆의 환자와 가족들을 쳐다보는 등 중환자실 내부를 두리번거리는 엄마를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옆 환자의 병상에 온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걸 보니 당신이 키운 조카들이 생각나는가 보다.  괜히 연명치료 거부 동의서를 써줬던 것이 찔려서 나름 다정하게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애들이 보고 싶어요? 오라고 할까"

엄마는  한참 우물우물 뭐라 말씀하시는데 겨우 알아들은 대답은 너무 엉뚱했다.

"그 ..옷, .........다"

아마도 그날 내가 입고 간 옷이 엄마 마음에 들었나 보다.

옆에 사람들만 없었다면 훌러덩 벗어 입혀드렸을 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따뜻한  봄날이 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