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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Mar 26. 2017

따뜻한  봄날이 오면

제삿날 잡아드리지요

엄마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지내신 지 벌써 5개월째다.

처음 입원하셨을 때는  곧 돌아가실 것만 같아 모두들 긴장했는데, 엄마는 이제 중환자실에 익숙해지셨는지 내가 가면 '응~ 너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반기시고 나도 덤덤해질 정도로 무심해졌다.

더 나아지지도 않고  더 나빠지지도 않은 채 엄마는 가을과 겨울을 중환자실에서 보낸 셈이다.

처음 입원했을  때 같이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나가고 없는 걸 보니 이젠 엄마가 최고참이 된 것 같다.

노인들이 누워있던  병상엔 또 다른 노인들이 들어와서  중환자실 병상은 여전히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엄마에게 면회 가는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는데, 그렇게 들락거리다 보니 중환자실의 노인환자들과 가족들까지도 관찰하게 되었다.

처음 중환자실에 들어오는 노인들의 면회시간은 요란하다. 갑자기 쓰러져 119 응급차에 실려온 환자의 아들 딸 며느리 손자 다 모여서 환자를 에워싸고 있다가 간호사들로부터 주의를 듣기도 한다. 두 명씩만 면회하라느니 아이들은 들어오면 안 된다느니 금방 나갈 거라느니 하면서 북적거리는 와중에 옆 침상의 엄마는 또 그걸 구경하겠다고 손발이 묶여있음에도 일어나려고 버둥거리고(요즘은 기운이 없어 목 들어 올리시기도 힘들지만) , 하여간 첫날은 그렇게 요란하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면회 오는 가족들의 회수가 줄어든다. 언제부턴가는 아예 보이질 않는다. 환자는 한 두 달쯤 그렇게 누워있다가 중환자실을 나가는 과정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분들 모두가 웬만큼 건강해져서 입원실로 옮긴 건지는 확실치가 않다. 복도에서 가족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 달에 4백만 원 어쩌고 하는 소리는 분명 중환자실 입원 비용이다.  엄마도 한 달에 한 번씩 중간 정산할 때면 그 정도를 납부한다.

담당의사와의 면담시간에는 주로 엄마가 다시 회복될 수 있는지를 묻게 된다. 엄마는 지금 그야말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매일 기관지 내시경으로 가래를 제거하는 치료를 받고 있는데, 치료를 멈추면 숨을 쉴 수 없어 바로 돌아가실 거라고 한다. 내시경 할 때 엄마가 괴롭지 않게 마취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위험해서 안된다고 한다. (엄마에게 더 이상 위험한 상황이 뭐지?)

매일 한 번씩 내시경 치료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가시는 건데도 내가 면회 갔을 땐 그다지 고통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아마도 엄마가 치매환자인 것이 이럴 땐 오히려 도움이 되나 보다.

의사에게 물었다.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을 이렇게 고통 속에 두어도 되는 건지, 만약에 당신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시겠냐고.

의사는 허~! 하면서 곤란하다는 듯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도 안락사가 허용되어야 한다며 사람이 죽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흔히들 말하는 잠자듯이 편하게 죽었다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그동안 많이 봐왔다며 고통 없는 죽음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엄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자식들이 할 만큼 했으니 보내드려도 괜찮을 것 같다고 위로해주었다.

형제들과 의논해서 말해주면 내시경 치료를 멈추겠다는 것이다. 내 표정이 심란했는지, 그동안 내 심중을 이미 파악했는지 너스레 떨듯이 말했다.

"꽃피는 봄날, 좋은 날 잡아서 알려주세요. 언제로 할까요?"

마치 '제삿날 잡아드릴게요. 언제로 할까요?' 묻듯이 말이다.

손자 태어나는 날도 좋은 사주팔자에 맞춰 제왕절개로 봤는데, 부모님 보내드리는 날도 자식들에게 편하고 좋은 날 잡는 시대가 되었다.

'결국 비용이 문제지요.'

처음 의사와 면담했을 때 이런 경우 자식들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물었을 때 했던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한 달에 몇백만 원씩 병원비를 내야 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게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면 더 암담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라는 걸 요즘 실감한다.


언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죽는 날은 무 잎에 가을 달빛이 밝은 날, 자는 듯이 그렇게 돌아갔으면.'

우리가 더 죄를 짓지 않도록 엄마가 그렇게 편하게 가셨으면 좋겠다.

이제 긴 겨울이 지나 3월도 며칠 남지 않았고 곧 4월이다.

이미 남쪽으로부터 꽃소식도 올라오는데, 엄마의 생명을 우리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지 심란하고도 잔인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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