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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Nov 16. 2016

봉숭아 꽃물

첫사랑이 찾아올까요?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신 이후, 처음에는 죄책감에 자주 들락거리다가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걸로 굳어버렸다.
엄마를 영 내다 버리지는 않았다는 느낌만 들 정도로 의식을 치르듯 일주일에 한 번 엄마를 만나고 다.
     
지난여름, 엄마 손톱에 물들여져 있는 봉숭아 꽃물을 보았다.
빨갛게 봉숭아 꽃물이 든 엄마 손가락을 본 순간, 엄마 손이 원래는 이렇게 가늘고 예뻤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항상 마를 날이 없어 투박하고 거칠기만 했던 엄마 손이었다.  지금 보니 그때에 비하면 마치 우아한 귀부인의 손으로 변한것 아 보였다.
손톱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은 게으른 여자들이나 하는 짓거리쯤으로 경멸했던 엄마였다. 봉숭아 꽃물도 사치로 여긴 건 마찬가지였다.  
예쁘게 변한 엄마의 손이 신기해서 자꾸 만져보았다.
요양원에서는 치매노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는데 아마도 봉숭아 꽃물들이기 시간이 있었는지 다른 노인들의 손톱에도 엄마처럼 봉숭아 꽃물이 들어있었다. 그제야 요양원 앞뜰에 피어있던 봉숭아꽃이 떠올랐다. 엄마와 산책하러 나가면 꽃밭 앞에 쪼그리고 앉아 쳐다보곤 했었다.
엄마는 손톱에 복숭아 꽃물을 들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을 첫사랑이라도 생각나셨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손은 옛날 일들을 기억하고 불러오는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작년 설 때 요양원에서 만두를 빚는 시간이 있었는데 엄마의 만두 빚는 솜씨에 모두들 놀랐다고 만나는 요양보호사마다 나에게 얘기해주었다. 치매노인들의 그만그만한 솜씨에 엄마의 만두 빚기는 단연 두각을 나타냈을 것이다. 얘기를 들은 나는 슬며시 웃고 말았다. 만두 빚기라면 엄마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엄마는 만두뿐만 아니라 송편도 예쁘게 빚었다. 새댁 시절 엄마의 송편 빚는 솜씨에 집안 여자들이 다 기가 죽었다고 고모들이 모이면 얘기하곤 했었다.

엄마는 그 특기를 살려 만두장사를 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을때 우리집은 중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재수생인 나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한참 돈이 들어가던  시기였다. 어느날 엄마는 아버지의 법률사무실 간판을 내리고 그곳에다 만두가게를 열었다. 엄마는그렇게 새벽에 일어나 만두속을 장만해서 하루종일 만두를 빚어 팔면서 우리 남매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문득 몇 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 할머니 지문이 닳아서 없어졌나 봐요. 인식이 되질 않아요."
엄마와 함께 주민센터에 가서 인감을 발급받으려는데 아무리 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도 인식을 못하자 직원이 한 말이었다. 얼마나 일을 많이 하셨으면 지문이 닳아 없어졌을까?
그렇게 고생하신 엄마에게 평생 효도하자고 맹세했던 우리 형제들이었건만, 엄마가 치매에 걸리자 하나둘 지쳐가고... ㅠㅠ


엊그제 엄마를 만나러 갔다가 엄마 손을 다시 보았다. 손톱에 예쁘게 걸린 봉숭아 꽃물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아마도 첫눈이 오기 전까지 충분히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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