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어디 가셨나요?
할머니 어디다 버리고 왔어?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하신 이후, 내게도 저녁시간이 생겼다.
엄마가 우리집에 계시던 지난 2년동안 저녁 외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엄마가 낮동안에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지내시다가 저녁 6시면 어김없이 집에 오셨기 때문이다. 일찍 잠이 드신다 해도 언제 깨어나 무슨 저지레를 할지 몰라 항상 긴장을 하며 살아야 했던 나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에게 저녁시간의 자유가 주어졌는데도, 모처럼 저녁 외출이라도 하게되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떠나질 않는다.
요즘도 밤에 잠이 들었다가 엄마 특유의 가볍고 힘없이 비칠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화들짝 놀라 깨곤 한다. 밤에 몇 번이나 깨어나 집안을 돌아다니셨기에 긴장하면서 지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가 보다.
가끔 저녁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일종의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 자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면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곤한다.
어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이웃집 아이의 무심한 말 한 마디에도 그 트라우마가 발동했다.
" 할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 아~ 할머니 말이지..."
뭐라고 변명할까 우물쭈물 당황하는 나를 아이가 빤히 쳐다본다. 마치 "할머니 어디다 버리고 왔어요?" 하며 따지는 것 같아 속으로 찔끔했다.
생각해보니 그 시간이 엄마가 주간보호센터 가시던 시간대다. 유치원에 가는 그 아이와 노치원에 가시는 우리 엄마의 버스 오는 시간이 같아서 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곤 했었다. 그 시간에 나 혼자 엘리베이터에 있으니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일 텐데 괜히 쩔쩔매고 있는 꼴이라니.
엄마는 어린아이만 보면 '아유~ 예뻐라 '를 연발하면서 말을 시키곤 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짧은 시간이지만 둘이 그동안 제법 친해졌었나 보나.
동생들에게 이런 내 트라우마를 하소연 했더니 자기네들은 진작부터 가졌던 심정이어서 이해가 간다고 한다. 나는 엄마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모시고 있는 동안 마음만큼은 편했나 보다.
잘 찾아오지 않아 괘씸하다고 여겼던 동생들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아 이렇게 얘기해줬다.
이 요양원이 시설도 좋지만 정말 괜찮은데 같다. 며칠 전에 다니러 갔을 때 요양사가 그러는데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그러더라.
" 우리 요양원에는 시장님 어머니도 계셔요. 그만큼 믿을만한 곳이라는 거죠."
학교 다닐 때, 같이 노는 친구가 반에서 일등 하는 아이라고 얘기하면 엄마의 대접이 달라졌었다. 그걸 엄마에게 써먹자면 지금 계시는 곳이 시장님 엄마도 계시는 럭셔리한 요양원이니 마음 놓으라는 얘기가 되나?
동생들에겐 거기까지만 얘기했다.
사실은 그 요양원 바로 옆에 시장님이 사시는 아파트가 있다는 말은 쏙 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