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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Feb 24. 2018

치매예방은 외국어 배우기로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 치매인 것 같다.
치매가 유전이라면 나 또한 엄마 나이쯤 되어 같은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는데, 현재로선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도 없다고 하니 어떻게 치매 예방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예전에 서정주 시인이 치매예방을 위해 아침마다 세계의 명산 이름을 암송하면서 기억력을 유지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또한 노인들에게 고스톱이 치매 예방에 좋다는 말도 많이들 한다. 어쨌든 머리를 많이 쓰라는 말이렸다.
나이 들어 외국어 공부를 하면 치매 예방에 좋다는 기사를 읽고는 나도 외국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먼저 가장 생소한 중국어부터 공략했다.
중국 사람들은 영어를 전혀 쓰지 않아 중국 여행할 때 소통이 어렵다고 하니 배워두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사위가 중국에 있는 회사로 가게 되어 딸네가 있는 동안에는 중국을 자주 여행할 것 같았다.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몇 개월만에 딸과 사위가 한국으로 돌아와 버려서 시큰둥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중국어를 배우는 동안 베이징 여행을 한 번 다녀왔다. 여행사 패키지로 갔지만 식당에서 음식 주문할 때 써먹기도 하고 시장에서 이거 얼마냐고 물어보는 등 내가 굉장히 잘해 보였는지 남편이 무리한 통역을 주문하기도 했다.  
내가 노린 게 바로 그거였다. 중국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영어로 서툴게 말하면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못한 게 바로 티가 나지만 중국어는 그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배운 기간이 짧아 중국 사람이 말하는 걸 알아듣는 건 힘들었다.
예를 들어 이거 얼마냐는 말로 발음도 그럴싸하게
" 쩌거 뚜오샤오 치엔?" 하고 물어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 라고 빠르게 대답하면 물어보지 않은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그래도 거리를 걸으면서 자기들끼리
"타이 꾸일러" 라고 하는 말은 알아들었다. 비싸다는 말이다.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건 북유럽과 러시아를 여행하고 나서다.
덴마크나 노르웨이 등 북유럽에서는 자기 나라 언어 말고도 영어를 병행해서 쓴다. 여행 다니면서 느낀 건데 아주 간단한 영어 단어만 알면 대부분 통하더라는 경험이 생겼다.
그 하이라이트는 핀란드에서 러시아로 들어가는 알레그로 열차 안에서였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공산국가였던 러시아에서는 영어를 거의 잘 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교육을 받지 않은 듯 호텔에서도 안내 직원 말고는 통할 수가 없었는데 열차 안에서 검문검색을 하는 군인도 마찬가지였다.
검문을 위해 열차 통로를 지나던 러시아 군인이 우리를 향해 이렇게 질문했다.
리더(Leader), 후( Who)?
내 옆자리 친구는 갑자기 물어보는 러시아 군인이 자기네 나라 러시아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생각했다고 한다. 아마도 리더, 즉 가이드가 누군지 물어보는 거라고 직감을 한 나도 뒷좌석을 가리키며 똑같이 응답했다.
Leader, There.
ㅋ ㅋ ㅋ ㅋ ㅋ
러시아 군인은 알아들었다고 끄덕이며 가이드에게 갔으니 일단 우리의 대화는 서로 통한 셈이다.



영어는 문법에 맞춰 정확하게 구사해야 하는 거라고 알고 있던, 그래서 외국인을 만났을 때 함부로 입을 열면 망신을 당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용감해지기 시작했다.
동네 주민센터에서 기초영어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반은 이미 1년 전부터 배우던 사람들이 계속 공부하는, 그룹스터디 같은 분위기였다. 회원들의 나이도 대부분 5,60대 들로 구성되어 있고 회화 위주로 나처럼 치매 예방 차원에서 공부하는 것 같아 일단 마음이 편했다.
일상적인 영어회화를 공부하다 보니 예전에 학교 다닐 때도 이런 식으로 공부했다면 지금쯤은 유창하게 영어로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한 영어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언어 말이다.
북유럽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 언어와 영어를 병행해서 쓸 수 있는 것도 실생활 위주의 영어교육 덕분이 아닐까?


아무튼 이제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문법이 틀려도 쭈뼛거리지 않고 과감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으면
"I don't know" 하며 어깨를 으쓱하면 그만일 테니까.
물론 품위 있고 우아하게 고급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한참 더 배워야 할 것이다.
외국어 공부는 나의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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