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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영 Dec 05. 2020

강릉에서 만난 사람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강릉에 2주 조금 넘게 지내면서, 좋은 인연을 만나 융숭한 대접을 받아 어안이 벙벙한 나날이다. 먼저, 강릉에 사는 멋진 캘리그래피 작가님과 인연이 되어 아름다운 작업실에서의 걸스 나잇에 초대될 수 있었다. 강릉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디자이너, 기획자, 그리고 강릉이 고향이신 카페 사장님과의 소소한 홈파티였다. (물론 소소 하다기엔 너무 좋은 공간에서 너무 맛있는 와인을 마셨다...)



서울에서는 꼭 정해진 선택지 안에서 미래를 결정해야 할 것 같았다. 

실 그 어떤 선택지도 맘에 들지 않았는데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던 것 같다.


나는 단지 나에 대해 이해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더 열심히 확보했어야 했던 것 같다. 조급해하지 않고 때로는 더 열심히? 쉬어야 이 빠른 사회에서 잠깐이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나 보다.


걸스 나잇 호스트 S는 전 직장에서 7년 가까이 일하면서 끊임없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원하는 삶을 모색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꾸준히 관련 분야를 공부했다. 세부 분야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비슷한 맥락 안에서 조금씩 역량이 쌓였고, 이후 별다른 후속 계획 없이 퇴사했지만 1년 만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 E는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연고도 없는 강릉으로 이주했다. 작은 회사라서 경력이 많지 않음에도 프로젝트를 혼자 책임져야 하지만 그만큼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강릉에 살아 본 적이 없지만 서울에 살 때보다 훨씬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기획자 Y는 미디어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업무에 책임감과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임했는데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껴 퇴사하고, 자신이 원했던 자연과 기술을 결합하는 콘텐츠 기획을 할 수 있는 현재 회사로 이직했다. 프로젝트 준비의 막바지라서 자주 야근을 한다면서도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가득한 그녀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들과의 대화는 즐겁고 충만했다. (직업병인지 자꾸만 녹음기를 켜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서울에서 나누던 이야기는 늘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이렇게 긴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신기한 것은, 나도 그 대화에 말을 얹을 수 있을 정도로 이곳에 와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위축되게 했을까? 누가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왜 혼자서 작은 모래성들을 쌓는 것에 집착했는지.. 파도가 오면 곧 사라질 것들.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토대부터 차근차근 쌓으면 더 튼튼하게 높이 쌓을 수 있을 텐데, 왜 홀로 쓸려 내려가는 모래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을까.



다음 날 숙소 호스트 아주머니께서 내가 차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안목해변에서 무려 양양 하조대까지 드라이브를 시켜 주셨다. 홀로 이곳까지 온 나의 용기가 대단하다면서, 앞으로 다 잘 될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실 이곳에 올 때 비싼 월세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결제를 해버렸었는데, 때로는 스스로를 믿고 결단력 있게 추진하는 힘이 필요한 것 같다. 아주머니께서는 15년 전 어렵게 모은 돈을 가지고 가족들과 한 달 동안 유럽 여행을 하셨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한다며,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라고 하셨다.


어쩌면 열심히 살고 있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에서 웬 여행객이 느긋한 감상에 젖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디서 만났든, 내게 힘이 되어 준 사람들인 건 맞다.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는 잘 못했지만 앞으로는 나눔에 더 너그러워지자고 다짐했다.



이제는 모래성을 혼자 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꼭 안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성을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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