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식구의 두 달치 짐싸기
짐 싸기 내용은 대부분 11개월 아이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이가 없거나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되게 재미 없고, 도움되지 않는 얘기일지 모릅니다. 저 역시 아이가 있기 전에는 떠나기 전날 밤 짐을 싸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돌도 되지 않은 아이와 함께 떠나는 준비에는 이런저런 자잘한 걱정이 따랐습니다. 아이를 빼고 나니 저희 부부의 짐은 별 걱정이 없었습니다. 성인들의 발리 2달 살기 짐에는 대단한 게 필요없으니까요. 옷 가지 몇 개, 칫솔, 신라면 4개, 책 한 두 권 이거 말고 뭐 더 필요한 게 있을까요?
28인치 대형 캐리어 2개와 베낭 2개.
1인당 30kg, 단호 몫 10kg까지 총 70kg.
우리가 두 달치 짐을 넣은 수 있는 부피와 무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짐을 싸야 할지 모르겠어서 몇 주전부터 생각날 때마다 가져가야 할 물건을 메모해두었다. 대부분이 아이 짐이었다. 단호는 11개월 아이로 하루 이유식 3번, 분유도 3번씩 꼬박꼬박 먹고 있다. 아이의 생존에 꼭 필요한 의식주를 기본으로 엉성한 리스트를 추려보았다.
여름 옷가지(외출용, 내복, 혹시 모를 긴팔), 수영복과 보행기 튜브, 기저귀(1~2일치만, 발리에서 살 예정), 수영기저귀(20개쯤, 발리에 없을지도 몰라서, 역시나 이곳에선 못봤다), 분유(2통만 챙겼다. 어차피 두 달치 분유를 가져갈 수 없어 거기서 새 분유로 갈아 탈 예정), 이유식용 쌀(3kg 세 포대), 실온 이유식(첫 일주일은 주방이 없는 리조트라 이사 가기 전까지 먹일 예정으로 20개 정도), 1~2인용 작은 밥통(이유식 기능이 있어 쌀과 온갖 재료를 넣고 취사를 누르면 끝), 라면포트(물을 끓이거나 아기 용품 소독, 이유식 중탕 때 사용), 이유식 어시던트(아기용 김, 요리가케, 육수비법, 아기 참치), 젖병과 아기용 식기, 몇 가지 과자들, 담요와 타올, 책과 장난감 몇 개, 로션(수딩젤, 모이스처 크림, 비판텐, 선크림)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비약(지사제, 해열제,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 감기약 등).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비행기에 가지고 탈 짐들은 따로 챙겨야 한다.
기내용 유모차, 비행시간 약 12시간 동안 먹을 이유식 2개, 분유(젖병, 보온병, 식힌물), 과자, 간식, 기저귀, 물티슈, 장난감 몇 가지 등
살면서 여행 짐싸기 리스트를 주도면밀하게 적어보고, 챙겼던 적이 처음이었다. 연수와 해외취업, 취재 등 꽤나 여러 번의 해외 오래 살기를 해봤지만 짐은 많아도 그냥 생각나는대로 넣었고, 뭔가 빠져도 사면 그만이었다.
우리 부부의 짐은 그래서 오히려 더 줄어들었다. 옷도 적게(가서 사자), 신발도 적게(가서 사자), 먹을 것도 줄이고(신라면 5개와 소주, 고추참치캔), 로션 스킨도 가볍게, 비상약 몇 가지, 책도 두꺼운 걸로 한 두 권씩만 넣었다. 여기에 노트북과 카메라 몇 개만 추가되었다.
두 개의 캐리어와 두 개의 베낭을 온 힘을 다해 잠그니 모든 짐들이 겨우 들어가서 가방이 터질까봐 걱정되었다. 캐리어 하나는 34kg, 그보다 살짝 작은 캐리어는 17kg이었다. 너무 무거워서 무게를 재려고 가방을 들다 손목이 나갈 뻔 했다. 문득 이 가방의 무게가 이번 여행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괜찮을까?
괜찮겠지
도착한 후 짐에 대한 몇 가지 후기를 붙여봅니다.
공항에서 캐리어 하나의 무게 허용량은 32kg입니다. 당당히 무게 34kg로 2kg나 초과한 우리는(봐줄까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사람 많은 카운터에서 터질 것 같은 가방 문을 열고 밥통을 빼야했습니다. 물론 그 밥통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경유도 했습니다 ㅋㅋ
기내용 유모차를 가져갈 때 유모차 커버가 없으면 기내에 직접 들고 타지 못하고, 보당 직전에 맡겨 수화물에 넣었다가 내릴 때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 경유할 땐 비행기 문 앞에서 받지만, 도착지에선 수화물과 함께 찾을 수 있어요.
술은 1인당 1리터 이상 못 가지고 들어오시는 거 아시죠. 걸리지 않으면 물론 그만이지만 간혹 랜덤으로 걸리기도 합니다. 그 자리에서 술병 뚜껑을 열어 우리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버려버리지요. 우리는 가져온 소주(1.8리터)를 무사히 지켰지만 며칠 뒤 왔던 지인은 모든 소주를 공항에서 버렸답니다.
아기 물건들 중에는 종류가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찾을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분유는 종류가 몇 가지 있으니 바꿀 순 있지만 제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할 것 같아요. 노발락 말고는 잘 몰라 일단 저는 익숙한 브랜드 네슬레에서 만든 포장이 제일 깔끔하게 생긴 제품(Latogen)으로 골라 원래 먹던(앱솔루트 명작)과 섞여 먹이고 있습니다.
기저귀는 마미포코와 팸퍼스,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 몇 가지가 있는데 마미포코가 가장 많고 가격도 저렴한 편입니다. 라지 사이즈 30개에 60k(4800원 정도)
아이 과자 종류은 많아요. 퍼프도 있고 쌀떡뻥도 있고 곡물이나 과일로 만든 비스킷을 파는데 이게 와따에요. 저희 부부 밥 먹을 때 이 비스킷이 5분짜리 베이비 시터 역할을 합니다. 크기가 꽤 커서 아이가 잡고 먹는데 꽤 시간이 걸리고 맛있는지 여기 와선 그것만 찾거든요. 한국에 몇 박스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유식을 만든 야채는 많아요.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 배추, 감자, 단호박 등등. 가격은 대부분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저렴합니다. 다만 육류나 생선 같은 애들이 조금 걸릴 때가 있죠. 닭, 소, 돼지, 생선 모두 있는데 괜찮나 싶기도 해요. 한국에선 한우만 먹였는데 이거 괜찮을까. 하지만 굶길 순 없으니 저는 몇 초 고민하고 바로 사서 닭도 먹이고 바라문디라는 듣도보도 못한(저 역시 먹어보지도 못한) 생선도 먹이고 로컬 소고기도 먹였습니다. 당연히 잘 먹었고 아직 탈도 없어요!
아기 약은 출발 며칠 전에 소아과에 사정을 말하고 상비약을 처방 받았었어요. 해열제, 연고, 지사제 등등. 여기도 약국이 있긴 한데 11개월 같은 어린 아이는 바로 줄 만한 약은 없어요. 보통 클리닉으로 가서 의사를 만나 처방 받는 편이 낫다고 돌려보냅니다. 클리닉 비용은 3-4만원 정도라고 저도 전해들었어요. 아직 병원을 가보지 못했거든요. 계속 안 갔으면 좋겠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생각나면 보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