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bysparks Dec 15. 2018

[준비] 지루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

비행기 티켓과 숙박만 정하면,  갑니다

여행을 많이 다니려면 일단 표부터 끊으면 된다.


그것도 환불 안되는 가장 싼 표로. 그러면 어찌됐든 간다. 떠나기 직전에 어떤 일이 터져서 이건 정말 못갈 일인데 싶어져도, 갑자기 이 여행이 너무 가기 싫어져도 돈 한 푼 못 돌려받는 티켓이 우리의 나약한 의지를 고양시킨다. 고민이 들 땐 언제나 가장 싼 티켓을 산다.


예전부터 미국을 가도 100만원 이상으로 티켓을 산 적이 없었다. 신혼여행으로 떠난 LA행 티켓도 둘이 합쳐 100만원 정도였다(심지어 유나이티드 직항이었다). 결혼식은 12월 31일이었지만 그 즈음은 아무리 뒤져도 싼 티켓이 없길래 가장 저렴한 티켓을 파는 3월로 신혼여행을 미뤘다. 돈 많이 벌어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를 타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누구보다 싼 티켓을 사는 것이 크나큰 행복이다.   


12월 1일 떠나는 발리행 티켓은 세 식구 합쳐 100만원 조금 넘는 가격에 구입했다. 발리행 티켓을 LA 티켓과 비슷한 가격에 샀다는 사실이 조금 자존심이 상하지만, 12월은 가장 저렴한 티켓을 사기에 적절한 시기는 아니다. 겨울이 싫어 떠나는 데 겨울이 아닌 때 갈 순 없었다. 남편과 나는 각자 알고 있는 티켓 사이트와 앱을 총동원해 약 일주일 정도 티켓을 검색했다. 직항 가격은 대부분 70~80만원에서 그 이상으로 비슷했고, 더 저렴한 가격으로 티켓을 사려면 결국 경유 항공 중에서 괜찮을 조건을 골라야했다.


2달이나 떠나기 때문에 굳이 직항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고, 이전에도 경유하면서 공항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아이가 있긴 하지만 오히려 한 텀 쉬었다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이 부분은 이후에 마음이 싹 바뀌었다). 경유지에서 하룻밤 자는 조건도 나쁘지 않았지만 아이 먹을 거리에 이것저것 생각하니 부담스러웠고, 최종으로 말레시이아 쿠알라룸푸르에서 3시간 경유하는 말레이시아 항공편을 선택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을 대충 둘러보고, 배를 좀 채우고 쉬었다 다음 비행기를 타기에 적절한 시간이었다. 가격은 1인당 50만원, 24개월 아이는 국제선의 경우 항공료의 10%를 낸다. 그래도 말레이시아 항공은 수화물 허용량이 넉넉하다. 1인당 30kg에 아이의 몫까지 10kg을 쳐줘서 세 식구가 70kg 무게의 세간살이를 들고 갈 수 있다.




다음은 숙박이었다. 일단은 에어비앤비를 뒤졌다. 애초에 발리에서의 2달을 용기냈던 게 에어비앤비에서 남편이 찾은 하루 $20짜리의 방갈로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는데?


그 뒤로 밤마다 둘이 침대에 누워 에어비앤비에를 뒤졌다. 필터에 '성인2, 유아1', '요금 하루 $30 이하', '집전체' 쳤다. 이런 뻔뻔한 조건에 부합하는 집은 사실 몇 개 없다. 아이까지 있는 가족여행을 위한 독채를 하루 $30 이하에 빌려주는 사람이 어딨을까. 그런 집은 의심부터 해봐야한다. 그런데 발리에는 있었다. 하와이에도 없고, 호주와 피지에도 없지만 발리에는 (적지만) 그래도 있었다.


짐작했겠지만 우리 예산은 넉넉하지 않다. 말했듯이 원래(어떻게???) 통장에 돈이 많거나, 어디서 일해도 돈을 많이 주는 신비로운 직업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2달 정도 어디 좀 다녀와도 뭐 큰일 나겠나 싶은 마음만 부자인 사람이다. 숙박은 예산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이면서도 가성비가 좋은 곳을 찾아야 했다. 그게 이기는 일이었다(ㅋㅋ). 그러나 몇 날 며칠을 찾아도 마음에 쏙 드는 집은 찾기 어려웠다. 가격이 저렴하다보니 물건 자체가 많지 않았고 집이 마음에 들면 바다에서 거리가 너무 멀고, 위치가 좀 괜찮다 싶으면 주방이나 세탁기가 없는 식이었다. 남편과 나 둘이라면 하루 10불 짜리 허름한 호텔도 정말 오케이지만, 아이가 있으니 최소한 이유식을 만들 주방이라도 있어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매일 밤 에어비앤비를 뒤진들 똑같은 집을 계속 들여다볼 뿐이었다. 모르는 집 구조를 다 외우기 직전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호텔 쪽으로 눈을 돌렸다. 호텔은 오히려 저렴한 방들이 수두룩했다. 방 상태는 모르겠지만 20~30불 정도에 바다 코 앞에 있는 방들도 많았다. 하지만 부엌이 없다. 세탁기도 없다. 주방과 세탁기가 없으면 고생은 모두 엄마의 몫이다. 내 몫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은 흐르고, 무언가를 오랜 시간 고민해서 결정하지 않는 내 성미가 나를 고생 속으로 등떠밀었다.


발리의 첫 행선지로 공항과 가깝고, 초보 서퍼들에게 좋은 파도가 있다는 꾸따로 정했는데, 꾸따 비치와 5분 거리에 있는 리조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율리아 비치 인(Yulia Beach Inn)'. 방은 작지만 독채 느낌의 단층 건물로 문 앞에 작은 테라스가 방마다 있었다. 아기를 재우고 나면 여기 나와서 저녁도 먹고, 얘기도 하기 좋을 것 같았다. 작지만 풀장도 깔끔해보였다. 조식도 포함할까 하다 말았다. 하루 숙박비는 2만 8천원 정도였고, 여기에 호텔스닷컴에서 막판에 붙이는 세금까지 더하면 7일 동안 24만원 정도였다. 매일 밤 집 찾기에 지친 우리는 이곳으로 예약했다. 일주일 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남은 기간 동안 지낼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미뤘다). 끝! 다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가기 전까지 밤에 TV를 보면서 놀 수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겨울이 싫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