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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bysparks Dec 13. 2018

[프롤로그] 겨울이 싫어서

발리에서 두 달만 살까


"올 겨울에는 따뜻한 나라에 좀 있다 올까?"

남편이 말했다. 지겹도록 추웠던 겨울이 막 끝나고 이제 겨우 어깨를 조금 펴고 다닐 수 있었던 올해 봄이었다. 아기가 태어난지 세 달 정도 지난 3월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곧바로,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른 나이에 돈을 무지막지하게 벌어서 통장에 20억 정도 넣어놓고, 달마다 나오는 이자로 소소한 삶을 사는 운 좋은 젊은 부부도 아니고, 융통성 있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연봉 높은 외국계 회사에 다녀 어디서든 일을 해도 일정한 월급이 나오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다.


남편은 파주에서 작은 목공방을 운영하고 있고, 나는 프리랜서 에디터로 책을 만들고, 취재를 하는 등등의 일을 하고 지낸다. 나도 우리가  한달에 얼마나 버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인생 뭐 별거 있나 막 쓰다 죽자 하는 욜로 스타일도 아니고, 나름 열심히 일하고, 때론 부자가 되는 꿈도 꾼다. 생활비 통장과 저축 통장에 각자가 번 돈을 성심 성의 껏 넣을 뿐이다. 시즌마다 다낭이나 오키나와 등지로 반드시 휴가를 가야 한다거나, 먹는 데에는 아낌없이 돈을 쓴다든가, 브랜드 신발을 커플룩으로 신고 다니는 패피도 아니다보니 잔고가 0이거나 마이너스일리도 없다.(아직은)

우리의 계산은 단순했다.
"우리가 겨울일 때 따뜻할 남반구의 저렴한 나라로 가면 숙소나 비행기 표를 빼고 생활비는 여기랑 비슷하지 않겠어."
"그러게나!"

남들과 다르다면, 남편과 나는 이런 결정에 큰 결심을 요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래서 결혼했고, 그래서 티켓도 끊었겠지만. 남편과 나는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나는 외항사에서 승무원을 하다 기자가 되었고, 남편은 금융업에 종사하다 목공방을 운영하게 되었다. 아마 처음 만났을 때도 남편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 남자와 결혼해야겠다 생각한 것 같다. 그런 선택이 대단한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승무원과 기자일을 하면서 20~30대 내내 뉴욕, 두바이, 싱가포르를 비롯한 지구 이곳 저곳을 여행하거나 짧게 살았고 남편 역시 워홀로 호주에서 젊음을 불태웠고, 슬로베키아와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수개월 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에겐 자본은 없지만  두 달의 일탈 정도는 '그럴 수 있는(그래야 하는)' 일로 생각하는 힘이 있었다.  

남편은 목공방을 운영하면서 몇 년전 부터 영상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방에서 만드는 물건들의 제작 과정부터 이런저런 소소한 아이템들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결과물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영상들이 차곡차곡 성실하게 쌓여가고 있다. 비교적 목공방의 비수기인 겨울에는 영상 콘텐츠에만 힘을 실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발리에서의 우리 생활이 흥미로운 콘텐츠 작업이 될 거라는 결론을 냈다. 나 역시 프리랜서 기자라는 직업 외에 부끄럽지만 가이드북과 인터뷰집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책은 연달아 망했지만 어쩐지 잡지나 클라이언트의 요청으로 만드는 일이 아닌 나만의 콘텐츠를 (굳이 힙겹게) 만드는 작업을 계속 반복하고 싶은 이상한 열망이 있었다. 남편은 영상으로 나는 글로 발리에서의 생활을 담으면 그게 곧 미래의 우리들의 먹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라는 '디지털 노마드적' 계획도 세웠다.

하나 걸리는 건, 세상에 태어난 지 채 일년도 되지 않은 아들이었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지만 너무나 작고, 귀엽고, 돼지 같은 우리 아들. 우리는 이 계획을 아이가 태어난 얼마 되지 않아 입 밖으로 꺼내고, 좋다고 결정까지 했는데 아마도 그건 아이를 낳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둘의 여행과 아이 그것도 혼자서는 걷지도 먹지도 화장실을 가지도 못하는 아이와의 생활은 뭐랄까 무척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단하다. 물론 아이의 탄생과 아이의 육아는 정말 행복하지만 그냥 '발리에서의 2달'과  11개월 아이와의 발리에서의 2달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뭐 고민도 걱정도 많았고, 많지만 일단 가기로 했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 아니겠는가 하는 마음이 하나였고, 또 하나는 이 여행이 아마도 어쩌면 우리에게 좋은 실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되나 한 번 보자."

다소 유동적인 직업을 가진 우리 부부의 디지털노마드적 노동과 돌도 안 된 아이와의 미지의 나라에서의 육아가 얼마나 흥미롭고, 얼마나 피곤하며, 얼마나 후회스럽고, 또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지. 해보지 않으면 결국 아무 답도 찾을 수 없을 테니까. 이 실험이 성공적이거나 적어도 완전한 실패가 아니라면 우리는 앞으로도 매년 이런 짓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에 돌입했다.





우리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준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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