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무취( 無色無臭)
1987년,
아침엔 코트, 점심엔 봄인 척하다가
저녁엔 겨울한테 다시 카톡 하는 3월 초였다.
우리 집은 단독주택이었고
내 방 창문을 열면, 앞집 창문이 너무 가까워서
사생활이라는 단어가 민망해졌다.
가끔 동시에 창문이 열리면 서로 눈이 딱 맞았다.
그때의 암묵적 규칙은 간단했다.
놀라지 않는다.
웃지 않는다.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각자 창문을 닫으며
'우린 아무것도 안 봤다'는 무언의 계약을 체결했다.
여느 때처럼
내 방에서 뒹굴다 깊은 잠을 자고 있었는데,
철사줄이 엉키듯이 머리가 급하게 아팠다.
꿈인지 생시인지 경계선에서 눈을 떴는데
깜깜해야 할 내 방이 온통 빨갰다.
천장도 창문도 벽도 문도..
'어, 어 이게 뭐지? 내 눈에 피가 나오나?'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이 가시기도 전에
내 방 시곗바늘 소리가 크게 들렸다.
볼륨을 끝까지 올린 것처럼,
천둥이 내 귀속에만 내려 찍어 괴롭히듯.
밀려오는 붉은 공포와 천둥 시계소리에
일어나려고 온갖 애를 써도
도무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쓰던 내 신체인데, 말을 안 들었다.
어떻게든 팔을 뻗어서 문 손잡이만 열고,
마루로 뛰쳐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팔을 들려고 했는데
그대로 붙어있고 움직일 수 없었다.
곧 창자가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것 같은,
휘몰아치는 멀미에 괴로웠다.
이제는 다리도, 팔도, 귀도, 눈도 머리도,
이질적인 내 숨소리까지,
한 부분씩 박살 나는 느낌이었다.
그 의지 하나만을 붙잡았는데..
극도의 한계까지 몰리기까지 몇 초도 안 지났다.
흐물거리는 정신을 짜내며 문 손잡이만 바라봤다.
그리고
기억이 안 났다.
눈을 떠보니 내 방을 끝내 나온 상태였다.
마루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뭔가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구토와 대변을 쌌다는 걸 알았다.
어지러움은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그때 엄마는 깨어서 부엌으로
성미 기도하러 가다가 나를 발견했다.
그 말이 들렸고 엄마는 내 괴로움을 몰라줬다.
나는 급하게 씻고 외투를 걸쳐
집에서 십 분 거리인 교회로 무작정 뛰어갔다.
찬 공기를 가르며 가는 동안 울렁거리던 속도
흐릿하던 정신도 점점 맑아지기 시작했다.
새벽 기도가 거의 끝날 즘 도착했고
울면서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기도가 끝나고 사모님에게 얼른 말했다.
새벽에 온몸이 마비가 왔고
쓰러지면서 문고리를 잡고 돌렸는지,
눈을 떠보니 마루에 쓰러져 있었고 대변을 했다고.
사모님은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재촉했다.
“지금 당장 너희 집, 일단 가보자.”
집에 도착하자 사모님은 방 안을 둘러보더니
혹시 연탄가스 아니냐고 하셨다.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아니에요! 우리 집 연탄 아니고 기름보일러예요.
그리고.. 저는 냄새를 원래 못 맡아요.”
사모님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돌아가셨다.
그다음 날 밤에도 같은 증상이 왔고 숨결은 엉켰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또 마루에 쓰러져 있었고
또 힘도 안 줬는데 똥을 쌌다.
이번에는 놀라지도 않았고 일어나 씻고,
본능적으로 무작정 새벽 기도하러 뛰쳐나갔고...
갔다 오면 또 멀쩡해졌다.
학교에서도 그저 멍할 뿐 겉으론 정상이었다.
며칠을 반복하다 보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학교를 조퇴하고
엄마랑 혜민병원에 가서, 뇌 CT까지 찍었다.
의사 선생님은 필름을 보더니 갸우뚱 거리며
" 깨끗한데요. 크게 이상 없습니다."
그날 밤 엄마한테 내 방에서 같이 자자고 부탁했다.
"그래 같이 한번 잠이나 자보자"
그리고 십 분도 안되어 주무시던 엄마는
난 엄마를 부축이면서 빠른 속도로 말했다.
“맞지? 맞지? 내 말이! 얼른 화장실 가자!”
나는 이 경험의 선배로써 엄마를 리드했다.
엄마는 계속 괴로워하시며 구토를 하셨다.
"엄마! 이제는 마루에서 자면 싹 괜찮아져"
그리고선
마루의 넓은 창문옆에서 시원하게 같이 잤다.
그리고는 둘 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가 뜨자
엄마는 집수리 아저씨들을 불러서 방을 보여줬다.
아저씨는 바로 앞집의 지하실 연탄 배출기가 꺾여,
내 방 쪽으로 향해 붙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선 벽지를 뜯어보니 금이 가 있었다.
그 틈으로 일산화탄소가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급히 보수를 하고 앞집에 가서 배출기를 돌려놨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조마조마 기도하며 잤다.
붉게 보였던 내방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내 머리를 메 만지며 말했다.
" 난 십 분만 맡아도 죽을 거 같았는데...
그동안 얼마나 괴로웠니? 미안하다."
난 밝게 웃었다.
일부러 똥 싼 게 아니란 걸 알아줘서...
그날 저녁 큰 고모가 급히 오셨다.
나를 꽉 안고 입술을 파르르 떨며,
" 네 큰삼촌도 29살에 연탄가스로 죽었는데...
너는 살아서 다행이야."
난 그 이후로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자는 습관을 세웠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나에겐 새날이었다.
그리고
새벽, 철야예배 피아노 반주를 20년간 하게 됐다.
귀한 생명을 살린 경로가
우아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생명이 덜 귀해지는 건 아니었다.
대신 살아남은 사실 하나를
단 하나의 숨구멍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