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가 들리지 않고, 보이다.

5. 극도의 불안증

by 루달



내 안의 내가, 태워버리다



지옥의 문이 내 뒤를 밟으며 늘 따라붙는 듯했다.

움직이는 것조차 형벌 같던 어느 날

한 장의 '강제집행 최종통보서'가 도착했다.


손에 들고 있자니, 종이보다 먼저 가슴이 떨렸다.

'이번에는 도저히 못 참아'

팔을 걷어 부치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


도무지 이게 뭐죠? 최종? 갑자기 이런 게 지금 오죠?"


수화기 너머로 무심한 한마디가 툭 떨어졌다.


서울 OO구 OO동 OO 202호로 지속적으로 보냈습니다”

그 주소는 우리 엄마네였다.


" 네?주소를 엉뚱한데 보내세요! 요금은 지불했어요."


"주소는 통신사에 상담해 보시고요.

저희는 이관받은 주소로만 이행하고, 채무 금액만 알아요.

고객님이 입금만 하시면 전화 안 합니다."


휘몰아침과 딱딱한 목소리는 끊임없이 어긋났었다.


생각이 엉클어지더니 다시 혈압이 오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 누가, 주소를 바꾼 건지도 모른 채 서류만 뚫어지게 보고만 있었다.



혹시나 하며 불길한 기억을 끄집어 봤다.

해킹당하고 정신없을 때에 핸드폰을 구입했던 그곳.

직원이 이것저것 묶고, 고가의 요금제를 권했었다.

대신 위약금도 낸다며 가입했던 장면이었다.


서류와 전화번호를 찾아서, 매장 점장과 긴 통화를 했다.

그 직원은 이미 그만둬버렸고, 결국 점장이 뒤늦게 실수와 책임을 인정하며 추징금 돈을 지불해 줬다.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하나'


그 순간 이미 내 안의 질서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현실은 자꾸만 내가 모르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그 흐름에서 불안은 점점 익어갔었다.






어느 날 숨이 조여 오는 느낌을 참을 수 없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기기 AS센터로 향했다.

'혹시 유심 복제일까, 원격 조작일까'


순서를 기다리면서 보니, 대부분 핸드폰 훼손 건이 많았다.

점검 결과는 역시나 문제없다며,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뭔가 이미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힘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어디든 숨어야 한다'는 본능.


나는 가차 없이 가방을 챙겨 들고, 번화가를 두리번거리다 모텔 간판에 눈이 멈췄다.

그곳으로 들어가 핸드폰은 꺼버렸다.

혹시라도 위치를 추적할까 두려웠다.


컴퓨터로 지인 경찰서 번호를 찾았고,

모텔 전화로 위치와 상황을 설명해 줬다.


기존에 쓰던 휴대폰 한 대를 화분이 많은 곳에 숨겨 버리고, 방으로 뛰어왔다.

문을 잠그고, 또 열고 또...

다시 복도를 나가 두리번거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여기도 절대 안전하지 않아'



불안한 생각이 지속적으로 피어올랐다.

결국 방에 들어온 지 한 시간도 안 돼 무작정 뛰쳐나왔다.

버스 정류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군중 속으로 파고들어 아무 버스나 탔다.

앞문으로 올라타자마자, 몇 초도 안 돼 뒤쪽으로 빠져나와 도착하는 다른 버스에 몸을 실었다.

누군가의 시선을 피해 그림자까지 따돌리는 사람 같았다.



'누군가 날 지켜보면 헷갈리게 해야 해'



호흡보다 더 빨리, 사람이 많은 정거장에 내렸다.

마침 1차선에 서울행 빈차 택시가 보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뛰쳐나가, 문을 열고 몸을 눕혀 타버렸다.


" 앗!!! 깜짝이야 뭐야? "


택시 기사님은 크게 놀래셨고,

난 드디어 고함소리에 안정을 차리게 되었다.

목적지는 서울 엄마네로 가기로 정하고선.






그날 밤, 경찰 지인은 내가 알려준 모텔을 찾아갔다고 했다.

주인은 '문을 계속 열었다 닫았다 하며 불안해 보였다'

고 말했다고 했다.


지인은 곧바로 경찰서로 가 CCTV를 열람했다.

모텔에서 나와 버스를 타는 장면까지는 있었지만,

이후 화면엔 내가 사라진 것처럼 남아 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희열을 느꼈다.


'못 찾은 거야? 그럼 됐어. 공중으로 사라 졌단 말이지?

나 성공한 거네?'


그날의 나는, 처음으로 주도권을 되찾은 사람처럼

속으로 카라르시스를 만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