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몸부림의 정화
침대 옆 망치를 바라보며 앉아 있던 어느 날,
밖에서 답을 찾는 일은 끝났다는 걸 인정했다.
내려놓는다는 건, 고집을 태워버린 후 있나 보다.
깊은 숲 속, 나 홀로 유리 상자에 갇힌 기분이었다.
나는 밖을 볼 수 있지만, 세상은 상자 안을 보지 못한다.
누가 손만 대도 돼도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얇은 경계.
그 안에서 살아 있는지 무너진 건지조차 모른 채,
허공과 현실 사이에 겹쳐져 있었다.
늘어진 적막이 방안을 잠식하고,
아스팔트 위에 튀기는 빗소리조차 버거울 때였다.
우울증이 점점 심해지니 누워만 있다.
지구에서 화성거리로 느껴지는 산책.
건반을 연주하러 앉아있는 건 중노동.
이제는 남은 건 손에 쥔 휴대폰 하나,
그리고 그 안의 카메라 기능뿐이었다.
밖으로 향할 수 없던 시선은 렌즈를 통해 안쪽으로 접혔고,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붙잡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손가락이 이끄는 대로 색을 눌러보고, 겹치고, 반죽하는 단순한 기계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나를 휘어잡고 올라타더니
마치 보란 듯이 나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그 흐름에 빨려 들었고, 작업은 내 의지를 넘어선 렌즈 너머의 세계였다.
나는 어둠 속에서 빛의 원소들을 떠올리며 몰입했다.
보석의 눈, 오로라의 숨결, 순금의 존재감.
손과 눈빛으로 즙을 만들어 색을 정렬시켰다.
몸부림을 자제하는 의식에 가까웠다.
고립을 넘어 번뇌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광기와 구원사이에 걸려있었다.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공허 나무에서 수액을 받아 내듯
고로쇠의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형태를 바꿔 예술로 말을 걸어왔다.
어릴 적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엄마는 피아노를 사주셨었다.
나는 방과 후 신발주머니를 내던지고,
매일 악보를 붙잡고 두드리며 충격을 버텼다.
그 손끝의 리듬이 세월을 돌아, 내 안의 벽을 두드리는 망치가 되었다.
지금은 그 망치가 카메라가 되어, 눈앞의 우주를 두드린다.
급박한 순간마다 무의식이 먼저 기억하고 작동하나 보다.
그렇게 태어난 수천 개의 이미지들은 단순한 시각물이 아니었다.
내면의 전류가 끊어지기 직전
분노, 불안, 분열, 우울들을 봉합할 수 있는 대리자였다.
하마터면 나를 놓을 수 있었던 구호의 날갯짓,
진동을 품은 터널 속의 목격자이자 메신저들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눌러 만든 아이들은
지금도 내 핸드폰이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
조용히 그 시절을 말하고 있다.
가끔 그 아이들을 다시 불러보면,
탄생의 진동이 향기롭기만 하다. 아가들의 분내처럼.
그때의 희망, 정화, 창조가 한꺼번에 만져진다.
그건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울림이었다.
같은 핸드폰이었지만 역할은 엄연히 달랐다.
결국 내 마음이 작은 우주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