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가지 마라 가지 마라
1987년, 신형원의 '개똥벌레'는 히트곡이었다.
가사는 잔흐름처럼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학교에서 6교시 가사 시간은 따분하게 늘어졌고,
하굣길에는 비를 끌고 오는 회색빛 바람마저 불었다.
바람 한 잎도 허투루 읽지 않던 예민한 날이었다.
방에 오자마자
무거운 몸을 침대로 내 던졌다.
하지만, 가뿐해야 할 기분이 점점 수상함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어스름한 내 방,
내 하루가 이미
몰래 손때를 탄 기척.
공기는
낯선 사람 체온처럼
어중띠게 따뜻했고,
내 방은
나보다 먼저
다른 시간을 써버리고 있었다.
곧장 일어나 다락문 한번 잡아당겨보고
창문 문고리도 한 번 짚어 보았다.
그럼에도 뒤통수가 먼저 이물질을 가늠했었다.
'지금 혼자 있는 거 아닐 텐데?'
쓱 우측 책상으로 시선이 먼저 움직였다.
늘 비밀 일기장을 책꽂이 가운데 숨겨놓는데,
오늘따라 책상 위에 버젓이 놓여 있었다.
책갈피 대신 머리카락을 한 올씩 숨겨 두었던,
나만의 국보가 도굴범에게 손 흔드는 꼴로
책상에 올려있다니.
서먹한 일기장을 넌지시 펼쳐봤다.
그리고…
으악!!
마치 엘리베이터 비상정지 버튼 누른 것처럼
발끝으로 쑥 꺼지는 느낌.
나는 반사적으로 침대로 튕겨 누웠다.
일기장 있는 곳은 지뢰밭으로 보였고,
그 방향을 느끼는 것조차 식은땀으로 이글거렸다.
벽에 거미처럼 붙어서
닌자도 울고 갈 허둥지둥,
마루로 뛰쳐나갔다.
오빠, 동생은 우하하하 천장을 뚫을 듯 웃고,
둘이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내 공포를 두고 가정의 평화는 왜 그렇게 즐거웠던가.
쾌감을 느끼는 얼굴들에는 적혀 있었다.
'낚였네.'
일기장을 펼쳤을 때
날개 달린 커다란 바퀴벌레가
짜뿌대어 있었다.
내 비밀이랑 바퀴벌레가
한 페이지에서 동거했다.
보증금은 트라우마, 월세는 개그였다.
관객이 나 하나 있는 록페스티벌급 공포.
오백 원짜리 동전 한 닢 들고서 집을 탈출했다.
한강 둑으로 뛰어가보니
모자 쓴 낚시꾼 아저씨들이 빽빽하게 차있었다.
점점 호흡은 고장 난 와이퍼처럼 펄럭.
내 불규칙한 숨을 안정시킬 공간은 없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에서는 말간 얼빛의 아이들이
텀블링 위로 튕겨 놀고 있었다.
애들은 조막손으로 공기를 매만지듯
거침없이 통통 뛰었다.
지들만 신났는데…
그래서 아저씨께 요금을 물어봤다.
툭툭 내뱉듯
“30분 300원, 1시간 500원.”
당연히 1시간, 인생은 효율이다.
아저씨는 나를
진품 명품 감정 하듯 훑어보더니
“60kg 넘으면 안 돼!”
"아닌데요! 59kg 예요!"
하지만 내 몸은 69kg라고 외치고 있었다.
인생은 연기도 필요했다.
아이들이 다 빠지고 난 뒤,
아저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럼 올라가 타봐.”
난 아저씨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꾸역꾸역 올라가서 튀고 접고 날아오르고...
벽돌집 담너머 해바라기까지 보면서
인생의 자유를 맛봤다. 훨훨...
그러다 입구 쇠기둥에 머리를 박았다.
눈꺼풀이 기절할 듯 별빛이 터졌다.
근데 돈 아까워서 계속 뛰었다.
마음은 안 웃는데, 입꼬리는 상황 파악 못 하고
승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근데 또 텀블링하다가 쇠기둥에 다리를 박았다.
이쯤 되면 놀이기구가 아니라 복수전이었다.
인생이 나한테 앙심 품고 휘두르는 철퇴였다.
저 멀리서 우리 학교 남자애들이 보이길래
얼른 한 시간 1분째에 내려왔다.
기세 좋게 나온 척했지만,
실은 영혼이 반쯤 대출 나간 상태였다.
죽어가는 몸을 부여잡고 흙 털고 산책 나온 듯
폼을 잡고 걸어갔다.
근데 발바닥부터 무릎까지 찌릿찌릿.
딱 그 느낌,
신이 ‘오늘 밤 넌 못 자’라고 점지해 주는 전조.
결국 눈물이 고인채 집으로 절뚝거리며 들어갔다.
마침 엄마가 계셨고 열변하듯 일렀다.
“오빠랑 동생이 내 일기장에 바퀴벌레 넣어서
나 도망갔는데 …”
오빠는 책상에 붙은 형광등 밑으로
머리카락이 반짝거렸다.
정자세를 하고 책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방문은 왜 열고 공부하는지...
엄마는 내 얘기를 아랑곳 듣지 않고
오빠를 슬쩍 보고 흐뭇한 미소가 한 바구니였다.
마치 한석봉 엄마의 모습.
마루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김을 펼쳤다.
김을 앞뒤로 들기름 붓칠을 하시고,
맛소금을 팍팍 뿌리며 소리쳤다.
" 오빠가 장난쳤다고 집을 뛰쳐나가!"
"엄마! 바퀴벌레가 얼마나 무서운데,
그리고 다락방 싫어! 화장실 소리도 다 들리고"
"그럼 마루에서 살던가 저기 비 올라 하네
옥상에 가서 빨래나 걷어와"
난 온통 작아진 채 조용히 덧붙였다.
“나… 머리도 박고 다리가 이상해 ”
"넌 아빠 닮아서 꽤 만 많아... "
난 더 조그라 들었다.
철 계단을 꾸역꾸역 한 발씩 닿을 때마다,
머리끝까지 감전된 듯 올라가서 빨래를 걷어왔다.
다음 날 반주 사례비 가지고
친구랑 학교 앞 고려병원에 갔었다.
엑스레이를 찍은 뒤, 역시나
다리뼈에 금이 가 있었고 깁스를 했다.
근데 한편으론 깁스가 싫지는 않았다.
엄마에게 꾀가 아닌 게 맞다는 걸,
날 보살펴 줄 거란 묘한 기대감으로.
설레 설레 발굽찌 하나 달듯 말 듯
목발을 짚으며 집에 왔다.
저녁에 엄마는 직장 끝나고 돌아오셔서
그제야 안아주셨다.
많이 아팠겠다고 하시며...
위험한 텀블링을 안 타겠다고 약속도 했다.
나는 보란 듯이,
깁스한 한쪽 다리를 번쩍 들며
깽깽이 하면서 집안을 들쑤셨다.
며칠 뒤
일요일이 되어 목발을 짚고 교회를 갔다.
목사님은 설교 말씀을 하시고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내 제자인 줄...'
난 목발을 곁에 세워두고 반주를 했다.
다행히도 페달 밟는 발이 아니었다.
집사님들은 나를 보며 손뼉까지 치며 감동했다.
“다리가 아파도 반주하러 나오다니 믿음이 깊어!”
아닌데…
그냥 그날은 교회 밥이 집밥보다 맛있어서
절뚝거리며 온 건데.
다음 날 월요일
학교에선 깁스를 본 친구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바로 깁스를 내밀었다.
“야, 여기다가 사인해라.”
하트 하나, 별표 하나. 바보 한 단어.
그걸로 충분했다.
친구들은 종일 교대해 가며 부축해 줬다.
혜연이, 바우, 경아.
쌀 한 가마니 훌쩍 넘어 힘들었을 텐데.
뼈는 금이 갔지만
우정은 더 단단해졌다.
벌레만 보면
숨이 먼저 걸린다.
그 시간의 자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