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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Feb 29. 2024

가깝고도 먼 그대

<내 인생의 인간관계>라는 주제로 나에게 ‘인간관계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는 남편. 사실 살아오면서 남편의 존재를 크게 느끼지 못했고 그저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는 존재라고만 인지하고 살아왔다. 벌써 결혼 12년 차를 맞은 우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가까운 존재는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같이 살아왔다면 알콩달콩 잘 살아가는 게 맞을 것이라는, 너무나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었다. 뜨겁게 사랑해야만 사랑인지 알았고 우린 사랑이었던 기간보다 사랑이 아닌 기간이 길었으니 그저 의무적으로 평생 살아가야 하는 관계라고 결론을 미리 지어 놓았다.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말과 행동 덕분이었다. 오늘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킨텍스 놀이 박람회로 견학을 가는 날이다.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밤 9시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에게 전했다. 남편은 나에게 미리 상의도 없이 오늘 연차를 썼다는 것이다. 나는 어리둥절했고 굳이 연차를 왜 썼냐며 잔소리했다.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종일 나와 같이 있고 데이트를 할 수 있는 날이 또 어딨겠냐며 그래서 연차를 썼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연차를 썼다고 잔소리한 상황이 미안해지면서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데이트라니. 아직도 우리 사이가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해 주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오늘은 오랜만에 맞는 데이트 데이가 되었다. 남편은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어 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바닷가로 바람을 쐬러 가기로 한 얘기는 물 건너가 버렸고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의 브런치 카페에 가기로 했다. 남편과 처음으로 인테리어가 멋진 카페에 가본 것 같다.      


카페 인테리어는 훌륭했고 우리의 분위기도 달달 했다. 시킨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가며 웃을 수 있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한바탕 낄낄거리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너무 남편에게 무관심하진 않았는지, 나에게 이렇게 조잘조잘 떠들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스스로 벽을 치며 살아온 건 아닌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의 벽을 허물고 평생 이렇게 조잘조잘하는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뜨거운 사랑은 아닐지라도 이런 순간이 쌓이고 쌓여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이다. 가깝고도 먼 그대였던 나의 사람, 남편. 그에게 사랑한다고 다시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Image by 鹈鹂 夏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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