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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달리 Jun 04. 2023

나의 어린이집 선택기준

기준보다 중요한 것

요즘 들어 듣는 말이 있다.


"자매는 어떻게 직장 다니면서 아이들을 지금까지 키웠어?" 잠시 생각해 보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냥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잃어버릴 뻔했으나 정말 기적과 같은 도움으로 찾은 일.


두 돌 정도 된 아이를 아침에 아이가 깨어나기 전에 자는 동안 몰래 출근했던 일.

아침 등원 도와주시는 집사님과 시간이 안 맞아 어쩔 수 없이 10분~15분 정도 두 돌 된 아이를 남겨 두어야 했다. 간혹 아이가 깨어나면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일들이 머리를 스치듯이 주마등같이 지나가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어떻게 키웠지?' 하고 말이다.


큰 아이는 1개월이 되어서는 친정집에 맡겨 주말에만 보러 갔고, 7개월이 되어서 데리고 와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그때는 남편이 아이를 옆에서 케어해 주었다.

그러나, 둘째는 50일이 되면서 바로 어린이집으로 보내게 되었으며 그때 남편은 지방에 있어서 온전히 혼자서 50일 된 아이와 5살 아이를 돌보며 출근을 해야만 했다. 


학생들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그 당시 학교에서 있었던 일, 가르쳤던 아이들 얼굴, 이름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면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고, 저녁에 누으면서는 오늘 미션을 완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없고 "뇌"가 없이 살았다. 조금이라도 "자아"를 생각했다면 그 당시를 버틸 수 없었으리라. 그냥 매일매일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두 아이 모두 다행히 좋은 어린이집을 만나 나의 육아를 도와주었다.

육아를 함께 감당해 주었다. 


내가 어린이집을 선택할 때는 몇 가지 선택 기준을 두었다.

우선, 그 당시 학교는 8시 20분까지 출근이었으므로 아침에 일찍 아이를 맡아 줄 수 있어야 했으며

야근을 할 수도 있으므로 늦게까지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지였다.

그러고 나서는 원장님과 상담을 하며 원장님께서 어떤 마인드로 원을 경영하시는지 살폈다.


원장님께서 프로그램을 열심히 소개하시는 분이 있고

아이들의 정서를 중요시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선생님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선생님들의 표정이 밝고 성품이 온화하신 분들이신지 말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좋은 프로그램보다 정서적인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학교 가기 전까지 어린이집을 다녔지만 

어린이집을 좋아하고 선생님들을 좋아하였다.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끔찍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매일매일 써주시는 알림장과 찍어 올려주시는 사진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시는 워터파크 같은 체험학습등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가 없는 시간 동안 아이들을 잘 돌봐주시기만을 바랐기 때문이다.

알림장을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들을 꼼짝 못 하게 해야 하는 일 등이 싫었다.

또, 아이들은 대야게 발만 담가도 즐거울 텐데 

아이들에겐 위험한 버스를 타고 체험학습 현장의 위험을 감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모님들은 어린이집이 이런 특별 프로그램들을 얼마나 하는지 비교하니 어린이집에서는 안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나에게는 이런 활동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하원을 해서 올 때 보면 옷도 말끔하게 다시 입고,

머리도 얼마나 단정하게 다시 묶여서 오는지 모르겠다.

이 또한 나는 

그냥 아이들이 옷이 좀 더러워져도 괜찮았다.

오히려 신나게 놀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루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일일이 적어서 알려주시지 않기를 바랐다.

다만, 꼭 알려야 할 사실만 알려주시고 엄마를 대신해서 아이들과 즐겁게 보내셨으면 했다.


나의 바람을 모두 가진 어린이집은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프로그램보다는 정서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곳을 선택했다.

비록 시설이 좀 별로여도 좋았다.

그리고 이왕이면 자연에서 많이 뛰어놀고 

수업보다는 손 놀이가 많은 어린이집이 좋았다.


내가 아무리 어린이집 선택 기준이 깐깐하게 세워도

집에서 멀거나 버스 운행을 안 해주서나 하면 나는 보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나의 기준보다 하나님께서 상황을 열어주시는 게 더욱 중요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원장님이 크리스천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아침 등원 집사님까지도 크리스천이시며 지금도 아이들 소식을 전하며 지내고 있다.


아이가 어려서 했던 기도가 생각난다.

"하나님께서 저를 엄마로 세워주시고 저에게 자녀를 주셨으니 제게 키울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허락해 주세요. 엄마가 없는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옆에서 지켜주시고 보해 주세요. 그래서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를 마음으로 느낄 수 없도록 안정감을 주시길 기도합니다."라고 매일매일 기도했다.


그러니 지금까지 "자매는 어떻게 아이 키웠어?"라는 질문에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무슨 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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