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엄마가 먼저입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너무 아픕니다.
꽃다운 나이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선생님.
내 제자를 잃은 것처럼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나는 분향소에 갈 수 없습니다.
아니 갈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세월호때 바로 옆 학교에서 근무했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 합동 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분향소에 다녀오는 것이 내가 가르치진 않았지만
내 제자들처럼 여겨지는 안타까운 아이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줄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는 그냥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분향소에 들어갔습니다.
첫 발을 내딛고 들어간 장면은
꽃다운 나이의 영정 사진들이 벽면에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들이 나이스에서 일상적으로 접했던 학생 사진들이었습니다.
그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눈물이 아니라 통곡과 신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분향소를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에 밀려 나온 것 같습니다.
나오고 나서 보니 내 손에는 휴지가 들려있었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내 손에 휴지를 쥐어준것 같았습니다.
그 기억으로 나는 선생님 추모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갈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가르친 제자들보다도 어린 나이이십니다.
제자를 잃은 것 같은 슬픔이 세월호 기억과 함께 다시 밀려옵니다.
이제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교육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대한민국 부모님들의 자녀를 향한 교육열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마주하며 세밀하게 챙기시는 선생님들의 헌신을 바르게 세워드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미래가 될 다음세대를 바르게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늘 교사편이었다.
늦잠자면 당연히 무단 지각이고
아프다고 연락오면 학교 마치고 병원가라하고 조퇴 허락을 안 해주었다.
기독 교사로서 그리고 크리스찬 엄마로
늦잠잤는데 "병원들렸다가 학교가~" 할 수는 없다.
견뎌보지도 않고 "조퇴하고 병원가~"라며 키울 수 없다.
당장은 '무단'이 '질병'으로 바뀌겠지만
내 자녀의 교육을 생각한다면 용납이 안되는 일이다.
정직, 성실, 신뢰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습니다.
꼰대로 불리는 가치들이
빛을 발하며 존중받을 것입니다.
선생님께 권한을 드려야 합니다.
학생을 바르게 교육할 수 있는 권한을 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은 귄위가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할 수 있는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