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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Sep 03. 2024

던져 버리고 싶은 도시락 가방

뷔페 먹는 아들을 보는 게 꿈


던져 버리고 싶은 도시락 가방


아내는 아이가 태어난 후,

집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도시락을 쌌다.


요즘 같은 급식 시대에 도시락이 웬 말이냐? 싶지만, 집 밖으로 나간 아들은

엄마가 싸준 도시락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는 원에 다니기 시작한 3살 때부터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등에 메는 책가방뿐 아니라 커다란  도시락 가방을 하나 더 들고 다녔다.    


아내는 원이나 학교에서 식단표를 미리 받아서

다른 아이들이 먹는 음식과 최대한 비슷한 음식으로 대체 음식을 만들었고,

아이가 먹을 수 있는 비건 재료들을 찾아 모양과 질감까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가 매일 들고 다니는 그 큰 도시락 가방에는 음식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었다.

혹시 일어날 알레르기 반응에 대비해서 바르는 스테로이드 연고와 먹는 항히스타민제

(일명 '씨잘'), 그리고 아나필락시스 증상에 대비한 응급 주사(일명 '넥스트')까지 비치가 되어 있었다.

아내도 워킹맘이라 출근 준비만으로도 바쁜데 아침에 따로 아이 도시락까지 챙겨야 하니

그 고생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집오기 전에는 아침잠이 많아서 자기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출근하던 사람이라 더욱 그랬다.

그런 아내가 매일 아침에 도시락을 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직장에서는 아내를 찾는 일이 더 많아졌다.

나는 그런 아내를 대신해서 등 하원 만이라도 시키려고 일 근 부서로 근무지를 옮겼지만

아내의 수고를 덜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이가 7살 때였다.

5살 때부터 시작한 경구면역치료는 계란 완숙 유지기와 밀가루 증량 기를 거치고 있었다.

갑자기 밀가루 용량을 올려서 인지? 어린이집에서 원인 모를 알레르기에 노출된

것인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매일 몸 여기저기에서 두드러기 발진이 발견되었다.


아이처럼 모든 음식에 알레르기 수치가 높고, 피부염도 심하면 음식 때문인지?

다른 원인 때문인지? 구분이 쉽지 않았다.

그날 아침에도 차량으로 아이 등원을 시키던 중이었다. 물론 커다란 도시락 가방과 함께였다.

아이가 양손으로 목덜미를 긁기 시작하더니 여기저기 가렵다며 칭얼거렸다.

마치 수족 같은 도시락 가방 안에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꺼낸 후, 육안으로 보이는 부분에

우선 발라주었다.


연고만으로 효과가 없으면 항히스타민제를 먹일

작정이었지만 아직 어린아이에게 먹는 약은 졸리거나 하루 종일 컨디션이 가라앉은 부작용이

있어서 먹이기 전에 몇 번씩 망설였다.


오늘처럼 아침부터 약을 먹여서 원에 보내는 날엔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어린이집까지는 차로 10분 거리다. 알레르기 때문에 집 앞에 가까운 원을 두고

차로 10분 거리를 돌아가야 했다.


가는 도중 목덜미에 손톱만 하던 두드러기는 어느새 엄지손가락 만 해지더니 왼쪽 팔에까지

번졌다. 결국 아이에게 약을 먹였다. 아이를 보내고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이 걱정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하자마자 원으로 달려가 아이를 붙잡고,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으니

다행히 더 번지지는 않고 금방 괜찮아졌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번엔 왼쪽 손가락을 긁기 시작한다.

간지럽다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10분 내내 긁는다.

"아빠 간지러워, 얼마나 간지러운 줄 알아, 나중에는 하도 긁어서 피도 난단 말이야"라며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장난 섞인 말투였지만 아이의 가려움은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보석은 마찰 없이는 닦이지 않으며, 인간은

시련 없이는 완벽해지지 않는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아이는 도대체 얼마나 크게 자라려고 이런 시련을 주셨을까?


어서 빨리 이 지긋지긋한 알레르기 고통에서

벗어나 이 큰 도시락 가방을 바닥에 던져버리길

소망하고 또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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