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 설 때 더 크게 자란다

부모는 앞만보고 달리기를 바란다

by 어디가꼬

부모는 앞만 보고 달리기를 바란다.


부모는 아이가 앞만 보고 달리기를 바란다.

남들보다 늦지 않기를, 조금이라도 앞서가기를 바라며 등을 떠밀곤 한다.

그러나 나는 덕유산 설국에서 깨달았다.

아이들은 달릴 때보다 멈출 때 더 크게 자란다는 것을.

올겨울, 우리는 늘 그렇듯 무주로 향했다.


스키는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처음엔 두려워도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나도 할 수 있어!”를 배우는 시간.
리프트 위에서 손을 꼭 잡고 웃으며 친구처럼 가까워지는 시간.

차가운 공기 속에서 몸과 마음을 함께 단단히 만드는 시간.

그래서 스키는 실력보다 함께한 시간이 더 소중한 운동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조금 달랐다. 스키장 아래를 벗어나,

눈꽃으로 뒤덮인 덕유산 정상까지 올랐다.

곤돌라는 타고 올라간 향적봉의 상고대는 숨이 멎을 만큼 장엄했다.
산 전체가 하얀 겨울왕국이 된 듯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던 길, 아이는 자꾸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은 추위를 피해 서둘러 내려갔지만 아이는 춥지도 않은 듯 눈 더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그 작은 눈 결정체 중에서도 세상에 하나뿐인 모양을 숨까지 참아가며 사진기에 담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출발할 때부터 아이가 추위에 움츠러들까, 걱정했었지만, 눈밭에 웅크린 그 뒷모습은 마치 작은 우주를 관찰하는 탐험가 같았다.



속도보다 방향의 미학


생각해 보면 아이는 평소에도 늘 그랬다.

산책길에서도 이름 모를 풀꽃 하나, 작은 벌레 하나 앞에도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오래 머물렀다.

남들에겐 그냥 스쳐 지나갈 풍경들이 아이에게는 탐구해야 할 세계이고 경이로운 신비다.

나는 이제 그 시간을 재촉하지 않는다.


멈춰 선 자리에서 아이의 세계가 조용히, 그러나 깊게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더 빨리 걷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멈춤을 믿고 기다려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아이의 시선이 우리가 함께 보낸 길 위의 시간 덕분이라고 믿는다.

목적지만 향해 달려가는 여행이 아니라, 아이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었던 여백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았던 경험들이 아이의 눈을 깊고 섬세하게 만들었다.


학업의 성취라는 결과만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보다,

발밑에 닿는 작은 생명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동할 줄 아는 아이가

훨씬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8년의 학교폭력 현장에서 만났던 수많은 아이가 결과의 압박 속에서 시들어 갔다면, 내 아이는 과정의 즐거움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정상으로 끌어올리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멈춰 서 있을 때, 그 곁에서 묵묵히 함께 기다려주는 일이다. 아이의 손에 담긴 작은 눈 결정체처럼, 아이의 마음속에도 세상을 향한 반짝이는 호기심이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란다.


부모에게 남기는 문장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정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멈춰 서 있을 때 그 곁을 묵묵히 함께 기다려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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