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가슴에 그려진 지도

여행은 아이도 아빠도 함께 자라게 했다

by 어디가꼬


여행은, 아이도 아빠도 함께 자라게 했다.


아이에게 아빠는 세상을 배우는 첫 번째 모델이다. 화를 다루는 방식,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 실패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말로 가르치기 전에 이미 보인다. 추억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아이가 앞으로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 된다. “사랑해”라는 말은 중요하다. 하지만 손을 잡고 걷던 저녁 산책, 자전거를 배우다 넘어져 함께 웃던 순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세던 시간은 더 오래 남는다. 아이의 기억 속에는 ‘말’보다 ‘함께 있었던 장면’이 저장되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아빠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속도에 쫓기던 발걸음이 멈추고, 방향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다시 정리하게 된다. 어른은 쉽게 웃지 않지만, 아이와 있으면 별것 아닌 일에도 웃게 된다. 그 웃음은 쌓였던 긴장을 풀어주고, 굳어 있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다. 아이와 쌓은 시간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아이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더 노력하게 된다.

결국 아이는 아빠를 성장시키는 존재다. 아이와 함께한 여행은, 아이도 아빠도 함께 자라게 했다.

경찰관 아빠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엄격하고 무뚝뚝한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다정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8년 동안 학교폭력의 최전선에서 학교전담경찰관 팀장으로 지내며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무너진 아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은 법이나 규칙이 아니라, 따뜻한 가정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나를 길 위로 이끈 것은 직업적 사명감만은 아니었다.


마흔이 넘어 어렵게 얻은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무뚝뚝했고, 일밖에 모르던 경상도 사나이였다.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시다 쉰일곱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막상 아버지를 추억하려 하니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워하고 싶어도 꺼내 볼 기억이 없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시리고 외로운 일인지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아빠를 떠올렸을 때

하얀 백지가 아니라,

천연색 풍경화가 펼쳐지게 하겠다고.



속도보다 방향을


나는 ‘속도’의 경쟁에서 눈을 돌리고 ‘방향’을 선택했다. 경찰관으로서의 소명을 다하되, 삶의 무게중심이 일과 성과에만 쏠리지 않도록 자신의 속도를 조절했다. 승진의 높이보다, 아이와 눈을 맞추는 깊이를 선택했다. 조금 느리더라도 아이와 함께 가는 길을 택했다.


주말마다 전국을 누비고, 11개국 17개 도시,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를 경험하며 쌓아 올린 소란스러운 기억들. 길을 헤매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던 순간들. 그 장면들이 모여 아이의 마음속에는 어떤 비바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내려가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터지던 아이의 웃음소리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성공의 증거였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으로 남는 것만큼이나, 아이 인생에 가장 다정한 친구로 기억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성취였다.

우리가 직접 정한 방향으로 나란히 걸어온 시간. 그 선택이 가져다준 평온함이야말로 내가 받은 가장 귀한 선물이다. 아빠와 함께했던 따뜻한 햇살 같은 기억들이 훗날 아이의 마음속에서 꺼내 볼 수 있는 보물 상자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함께 걸어온 모든 길은

정답은 아니었을지라도

정답을 찾는 여정으로
아이의 가슴속에 지도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부모에게 남기는 문장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비싼 교육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해 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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