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부자

육아휴직 같은 3개월

by 어디가꼬

기동대로 발령

내가 근무하는 직장은 동일부서에서 5년 이상 연속으로 근무하면

장기근무자가 되어 타 부서 전출 대상이 된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인사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외가 없었다.

나는 그동안 운이 좋아한 부서에서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근무를 했다.

새로 부임할 곳은 경찰관 기동대 팀장이었다.

기동대원은 총 80여 명, 그중 6명의 팀원들과 함께 생활했다.

팀원들은 경찰 임용 후 순번에 따라 경비부서(기동대)에 의무적으로 1년을 근무해야 했고

팀장들은 보직공모를 통해 선발했다.

나는 승진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비교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기동대 팀장을 지원했다.


아킬레스건 파열

기동대 특성상 팀장의 역할은 팀원들을 관리해야 한다

우선은 가까워져야 했다. 20,30대 젊은 팀원들과 이제 40대 후반을 한참 넘긴 내가

가까워지기란 쉽지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술도 한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뭔가 공통점을 찾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다. 할 줄 모르는 게임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고,

체력단련 시간이나 단합 훈련 시간에는 함께 운동도 했다.


그런데 다른 팀과 족구 시합만 하면 자꾸 진다. 화가 난 대원 하나가 한마디 한다

"우리 축구로 한판 붙어봅시다. 축구는 자신 있어요" 그렇게 시작한 축구가 화근이 되었다

3대 0으로 우리 팀이 이기고 있을 때였다. 나는 중간에서 볼을 가로채 골대로 향했다

골키퍼와 1대 1 단독 찬스였다. 너무 흥분해서였을까? 그동안 아킬레스건을 너무 혹사시켜서였을까?


오른쪽 발 뒤꿈치부터 "뚝"하는 소리가 나면서 힘없이 쓰러졌다. 나는 쩔뚝거리며 병원으로 갔고, 검사 결과 아킬레스건이 파열됐고, 당장 수술이 필요하단다, 수술이 끝나도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동안의 재활치료기간을 거쳐야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공백기간이 길어지면 매년 승진시험을 위해 받아야 하는 근무평정 점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점수는 3년간 시험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상 승진이 어려워졌다.

육아와 직장생활로 힘들면서도 남편의 직장생활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시간 부자를 꿈꾸다

그렇게 수술 후 집으로 돌아와 통원과 재활치료를 해야 했다.

한쪽 다리를 엉덩이까지 통깁스를 하고 나니 혼자 일어나 걷는 것도 힘들었다.

집안일이라도 도우려고 목발을 집고 다녔더니 겨드랑이가 아빠 왔다. 고민 끝에 바퀴 달린 의자를 공수해왔다. 그렇게 의자로 굴러다니며 집안일을 하고, 목발을 집고 다니며 아들 등, 하원을 시켰다.

어떻게든 아내를 돕고 싶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마음을 좀 더 편하게 먹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아들 등원을 시키고 나면,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서 했고,

커피 한잔을 여유롭게 마시며 틈틈이 책도 읽었다.

가만히 거실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자니 구름 사이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비행기도 보이고,

시간마다 지나가는 기차소리도 들린다. 평소에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들의 하원후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들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었고,

함께 길가에 핀 민들레 홀씨를 입으로 '후' 불기도 하고,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기도 했다.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가져보지 못했던 여유와 시간을 즐겼고, 아들과 단둘이 보낸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했던 건 아들이 크는 모습을 매일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이었다. 비록 몸이 좀 불편했고 승진은 좀 늦어졌지만, 아들과 함께한 3개월은 무척 행복했고, 시간 부자를 꿈꾸는 계기가 되었다.


멋 훗날 아들이 아빠는 왜 진급을 빨리 못했어?라고 묻는다면

진급은 빨리 못했지만, 네가 크는걸 가까이서 자세히 지켜볼 수 있어

매일매일이 너무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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