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등교 첫날
드디어 아들의 초등학교 등교 첫날이다. 나는 얼마 전 아들의 초등학교 적응을 돕기 위해 교대부서로 근무지를 옮겼다. 육아휴직을 할지 말지 마지막까지 고심하다가 내린 결론이다.
오늘은 야근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을 하는 날이다. 집에 와서 한숨 자고 일어나 12시쯤 점심을 간단하게 챙겨 먹고 아들 학교로 향했다.
입학 첫날 아들의 하루 일정은 4교시 수업을 하고 학교에서 급식을 챙겨 먹고 돌봄 교실로 가서 놀아가, 1시 50분쯤 학교바로 앞에 있는 피아노 학원을 걸어서 이동한다. 피아노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픽업을 오는 축구클럽 차량을 타고 다시 축구클럽으로 이동한 후, 축구 수업을 받고 끝나면 축구클럽 차량을 타고 영어학원으로 가서 영어수업을 듣고 집에 오면 오후 6시 10분이다.
나는 당분간 아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하교 후 아들의 이동동선을 따라다녔다.
하교 후 학교 앞과 학원가의 풍경은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노란 버스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이제 막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 걱정에 학교 앞에서 서성이는 부모들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목에 걸린 핸드폰으로 부모와 통화하는 아이들의 모습들로 학교 앞은 분산하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육아한다는 것은, 부모가 직장생활 후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줄 학원을 믿고 의지하며 막대한 사교육비를 부담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부모들이 감내해야 하는 듯했다.
직접 겪고 나니 날로 심각해지는 인구절벽과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알 것 같았다.
나는 돌봄 교실로 향했다.
나는 돌봄 교실에서 아들의 첫 동선인 피아노 학원으로 함께 걸어서 이동했고, 피아노 수업을 하는 동안 주변을 산책했다. 그런데 갑자가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는 돌봄 교사와 전화로 간식문제를 상의하다 속이 상한지 나에게 그간의 상황을 이야기 눈물을 흘렸다
학교의 규모가 크다 보니 돌봄 교실도 2개의 층으로 나뉘어 8개의 교실이 있었다, 울아들이 있는 교실로 가니 우려한 데로 20~30명 정도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치즈팝콘과 컵케익을 먹고 있었고, 울아들은 혼자 구석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고, 미리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돌봄 교사의 입학식날 오리엔테이션 때 보여줬던 마지막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생각났다.
"아이들 초등학교에 처음 힙한 한다고 많이 걱정되시죠, 부모님들이 걱정 없이 직장 생활하도록 가정에서 처럼 잘 돌보겠습니다"
하지만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간식문제로 전화연락을 했던 아내에게 더 이상 간식은 자기 담당이 아니니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단다.
부모 입장에서 먹어서 위험한 음식은 피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도 먹이고 싶었지만, 돌봄 교사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간식 업체와 직접 통화를 원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그냥 업체에서 제공하는 간식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외부 음식 반입이 되지 않지만, 울 아들은 특별한 경우이니 집에서 간식을 준비하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그렇게 첫날 3군데의 학원을 돌아다니며 집으로 오기까지 나도 아들도 고생이다.
아들이 그저 퇴근하고 만나는 시간까지 즐겁게 잘 적응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첫날 급식은 어땠니?
저녁을 먹으면서 심각해 보이는 아내가 담임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아내도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어, 학기 초 너무나 바쁜 학교생활을 잘 알기에 최대한 담임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직접 학교에서 영양, 보건, 돌봄 교사들을 찾아디니며 아이의 급식과 관련된 안전상의 문제를 상의했고, 미리 식단표를 확인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목에다 명찰을 걸어서 급식을 받고, 먹을 수 없는 음식은 도시락을 싸서 보내기로 했다.
담임에게는 아이가 아직 어리니 적응할 때까지 급식 때 목에 걸고 있는 명찰이 배식을 담당하는 영양교사에게 보일 수 있도록 꺼내주고, 도시락 뚜껑을 열어 먹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몇 날며칠 고민하다가 최소한의 부탁을 했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생각했다. 유별난 부모가 되기 싫었다.
첫날 아침 7시 담임과의 소통은 알림장으로 해달라는 담임의 요청에 따라 오늘은 다행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 도시락이 없으니 목에 걸린 명찰만 잘 보일 수 있도록 꺼내달라고 알림장에 글을 남겼다.
그런데 하교 후에도 알림장을 확인하지 않는 것이 보인다. 함께 올라온 단체 알림톡은 확인을 했는데도 말이다. 하교 후 아들에게 물어보니 담임이 명찰을 꺼내주지 않았고, 아들도 꺼내지 못했지만 다행히 아들이 눈으로 보고 먹을 수 있는 음식만 배식을 받아 위험한 상황을 없었다고 한다.
그다음 날 까지도 담임은 알림장을 끝내 읽어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난 저녁 갑자기 아내가 올린 메시지가 삭제되었다. 메시지를 확인하지도, 답장을 보내지도 않고, 하루가 지나 갑자기 학부모가 보낸 메시지를 삭제했다. 학부모 입장에선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다행인 것은 아들이 학교생활이 재미있고, 또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울 아들은 늘 그래왔듯이 이런 상황에서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상황들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아들아~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나는 남들보다 보호받고 배려받아야 하는 아들을 위해, 학교 운영위원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학교일에 관심을 가지고 봉사하고 싶어서다
우리의 이런 노력이 온 세상에 전달되어 당당하고 멋진 아들로 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