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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Dec 28. 2022

제주도에 대한 나만의 기억

3개월간의 파견

해안방어 3개월

해병대에 입대한 지 3개월째 갑자기 중대가 파견을 간단다

파견 지는 제주도다. 군대 가기 전에 제주도 한번 꼭 가보고 군대를 가야지 했는데

그토록 가고 싶었던 제주도를 군대에서 이등병 달고 갈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우리나라 섬에는 군대가 상주하지 않는다. 대부분 해양경찰이 방어 임무를 맡는다

그 이유는 군사기밀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제주도의 경우는 달랐다. 제주도처럼 규모가 큰 섬은 해병대와 특전사가

방어 임무를 도왔다. 그 이름은 기동 타격 중대였다 


내가 있던 포항 1사단에 기습특공대대에서 1개 중대가

3개월씩 돌아가며 제주도로 해안방어를 나갔다.

가기 전부터 군대 선임들이 군기를 잡기 시작한다

가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긴장해라, 긴장~

씰씰 쪼개지 말고(웃지 말고), 3보 이상 구보다(무조건 걷지 말고 뛰어다녀라)

가기 전부터 진이 다 빠진다


제주도 상륙

부대가 제주도 갈 준비를 마쳤다. 나는 무슨 부대를 옮기는 줄 알았다.

우리가 타고 갈 배가 모습을 드러낸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노래가사처럼 달콤한 제주도를 비행기가 아닌 LST라는 해군 군함을 타고 간다.

쾌속선으로 4~5시간 걸리는 제주도를 우리는 2박 3일 후에 도착한다.

우리가 탈 LST는 해군 수송 군함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쓰던 배를 인양받아 사용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난생처음 큰 배를 탔다. 하지만 너무 느려서 그런지 걱정했던 멀미는 하지 않았다.


어둠이 짙게 내린 밤, 우리가 타고 온 LST 배의 문이 2박 3일 만에 드디어 열린다.

상상만 하던 제주도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제주도사령부에서 미리 준비해 둔

군용 버스를 타고 3달 동안 생활할 부대로 이동했다. 어두운 새벽이라 무슨 실미도에 끌려가는 느낌이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한 곳은 입구에 군초소가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니 시골 초등학교만 한 운동장과 조금 한 건물이 있었다. 밤늦게 도착한 탓에 우리는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바로 씻고 다시 잠을 잤다.


4시간쯤 지났을까? 당직사관이 기상, 구호를 외친다. 전쟁이라도 난 걸까?

철모와 탄띠 착용하고 연병장 집합이다. 밖으로 나와보니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연병장에는 자욱한 안갯속에 희미하게 민간 트럭들이 보인다. 한 대도 아니고 여러 대다

성난 사자처럼 시동을 켜고 무언가를 기다린다. 잠시 후 트럭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무직업 3명, 목장 작업 2명, 거름 작업 3명"

당직사관의 재촉하는 소리를 지른다

"빨리빨리 타"


실미도인가? 기동타격대인가?

영문도 모른 채 민간인 트럭에 무작정 올라탔다. 트럭은 새벽바람을 가르며 어딘가로 달려간다

아침 동이 틀 때쯤 트럭이 멈춘다.  아직 1월이라 너무 춥다. 제주도에는 한 번씩 싸라기 눈이라고 쌀같이 딱딱한 눈이 내리던 시기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에 우리 부대에서 "공포의 시베리아 무 작업"악명이 높았던 작업장이었다. 그만큼 업주가 힘든 일을 많이 시켰다. 바람 한 점 막아줄 나무한그루 없는 정말 허허벌판이다. 조금 걸어가니 온천지가 무밭이다, 제주도 바닷바람과 남쪽의 따뜻한 햇살을 그대로 받고 자라서 그런지 무의 크기가 씨름선수 이만기의 장딴지 만하다.

첫 번째 임무는 무를 밭에서 뽑아서 트럭에 가득 실는 것이었다. 추운 겨울바람을 그대로 맞아가며 무거운 무를 들고 나르니 금세 기운이 바닥이다. 업주는 잠시 담배 한 대 피우며 쉬는데도 눈치를 준다. 잠시 후 업주가 가가멜처럼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경운기를 몰고 온다.

경운기에는 우리들이 먹을 음식이 준비된 것 같았다.

"밥 먹고 합시다" 군대 짬밥 3개월째라 사제밥이라면 뭐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경운기 뒤에는 커다란 솥이 3개가 있었다,

하나는 밥, 하나는 돼지 김치찌개, 하나는 막걸리였다.  

무슨 사육하듯이 엄청난 양의 음식을 가지고 왔고, 같이 간 군 선임들은 남기지 말고 악기 있게 먹으라며 호통을 친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악기 있게 먹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놈의 해병대 못쓸 전통이 사람 잡는다.


밥 먹고 돌아서자 바로 업주의 호통이 떨어졌다.

"먹었으니 일들 합시다"

두 번째 임무는 트럭에 가득 실린 무를 기계 앞에 내려놓고, 채 썰은 무를 태양볕에 말린다, 반쯤 마른 무는 뒤집고, 다 마른 무는 포장지에 담았다. 우리는 제주도산 말랭이를 만들고 있었


그렇게 3개월간 우리는 주로 대민지원에 이용됐다. 매일 작업의 종류를 바꿔가면서 말이다.

전시상황이 아니면 우리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은 터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끌려갔던 무밭은 제일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다시 찾고 싶은 제주도

다음날 아침 작업으로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일어났다, 오늘도 어김없이 트럭들이 기다린다.

어제 공포스러운 작업을 생각하며 겁을 잔뜩 먹고 또 트럭에 올랐다. 트럭은 렌덤이라 순서대로 탄다. 오늘은 트럭이 좀 멀리 간다. 그곳은 목장 작업을 하는 곳이었다. 말 그대로 목장의 울타리를 짓고, 동물들이 먹을 풀이 잘 자라도록 거름을 주는 작업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찌른다. 군대에선 맡아보기 힘든 냄새다. 잠시 후 목장 안에서는 젊은 여대생들이 여럿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제주도는 인건비가 비싸 대학생들도 농장으로 자주 알바를 하러 오곤 했었다. 우리가 간 날도 제주의 대학에서 여학생들이 알바를 하러 날이었다.

일도 작업도 힘들지 않았지만, 여대생들과 함께 일을 하니 입이 다물어 지질 않았다.

게다가 점심메뉴는 돼지숯불갈비다 목장 주인이 고깃집도 같이 운영하고 있던 차였다.

마지막으로 부대로 돌아가기 전 목장주인은 우리를 데리고 대중목욕탕으로 향했다.

덕분에 따뜻한 탕에 몸까지 녹이니 마음도 사르르 녹았다. 농장주인의 따뜻한 배려에 나중에 제대하고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렌덤으로 운영된 작업은 3개월 내내 우리를 울리고 웃겼다.


제주도의 불편한 진실

우리가 있던 포항 1사단에서의 부대 임무는 기습특공이었다. 부대 특성상 IBS(소형 고무보트) 침투훈련은 녹슬지 않도록 숙달해야 했다. 제주도 파견 기간 동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훈련을 위해 포항에서부터 보트를 싣고 갔다.


훈련장소는 부대가 있던 조천읍 인근의 한 바닷가였다.

이곳이 정녕 훈련장이란 말인가? 바닷빛은 에메랄드처럼 맑고, 수온은 남쪽이라 따뜻했다.

 제주도에서도 연인들의 핫한 데이트 장소로 잘 알려진 '함덕해수욕장'이었다.


대민지원이 끝날 무렵, 제주 해안 방어 사령부에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한다며 우리가 처음에 타고 왔던 것과 같은 군용 버스를 준비해 주었다. 제주도 일일 투어를 시켜준단다. 군바리들은 그냥 부대에서 쉬게 놔두는 게 제일인데 무슨 관광이람, 졸병들은 또 불려 가서 하루종일 부대관광용 김밥을 쌌다. 다음날  군복을 입고 줄지어 다니며 버스에서 한 손에는 수통을, 한 손에는 썰지도 않은 굵은 김밥을 들고 배를 채워가며 구경을 마쳤다. 당시 제주도는 유채꽃이 만발하는 3월로 곳곳에는 인생사진을 건지겠다고 이리저리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신혼부부들이 많이 보였다. 그곳은 바로 제주도 필수 관광코스인 '한림공원'이었다.


제대한 후 이다음에 꼭 제주도를 다시 찾아서,  아내와 함께 IBS훈련이 아닌 해수욕을 즐기며, 버스가 아닌 고급횟집에서 김밥이 아닌 코스요리를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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