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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Aug 29. 2018

서울살이.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기에 낯선 곳에서 살아간다.

여행을 다녀왔다. 

집에 가는 기차에 축 늘어져서 창밖을 멍하니 본다. 지나가는 풍경의 집들 중 하나가 우리 집이었으면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하고 피곤하진 않을 텐데. 바로 들어가서 쉬면 될 텐데. 눈 앞에 보이는 집을 익숙하게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얼굴 모르는 누군가가 부럽다. 우리 집을 지나가는 여행객들도 그런 생각을 할까. 집에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피곤한데, 그냥 눈 앞에 보이는 저 집이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할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나에게 익숙한 집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가 도망치듯 떠나온 서울의 좁은 원룸도 지나가는 누군가에겐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다.

나는 참, 서울과 맞지 않다. 하지만 이것도 서울에서 살아봐서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는 무조건 서울로 가고자 했다. 여긴 지긋지긋해. 어디든 좋으니까 멀리 떠나고 싶어. 당시에는 가족들과 크고 작은 마찰들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은 상태여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좁은 하숙집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알았다. 나는 여기에 정을 붙일 수가 없다.

온전히 나 혼자다.

나름대로 정을 붙여보겠다고 그 좁은 방을 할 수 있는 한 꾸며보았다. 그래도 우울했다. 대학 와서 발병한 우울증의 원인에 그 좁은 방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거기서 도망치기 위해서 반수를 택하면서까지 집으로 내려왔다. 고독한 공부인데도 익숙한 풍경들 사이에서 하루하루 행복했다. 하지만 돌아가야 했다. 한 사람의 몫을 하기 위해서 거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그 첫 단계는 ‘고향을 떠남’ 임을 실감했다. 

사실 나는 전학을 한번 했었다. 서울은 나의 세 번째 터전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도 서울이 좋아지진 않더라. 이젠 4년째니까 어찌어찌 적응은 했지만 지금 와 있는 이 익숙한 집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그래서 나에겐 서울이 별 매력이 없다. 하지만 돌아가야 한다. 만나는 친구들, 시시때때로 말을 거는 가족, 넓은 하늘, 익숙한 도서관, 바람이 잘 통하는 넓은 집에서 만날 친구가 없고 가족도 없고 좁은 하늘, 익숙해지지 않는 도서관, 창문을 열면 벽이 있는 좁은 방으로 가야 한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게 너무 아깝고 조급했다. 

하늘이 넓다. 높은 건물이 없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로 좋아하는 곳이 있으니까 그걸로 됐나, 싶다. 도망갈 곳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히 아닌가. 또, 작은 변화가 있다. 예전에는 서울이 무섭고 싫어서 떠나는 것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여기가 좋고 즐거워서 떠나는 것이 아쉽다. 싫어하는 곳으로 끌려가는 귀양살이에서 좋아하는 곳에서 떠나는 나그네가 되었다. 나그네가 훨씬 낫다. 게다가 이 곳을 소중히 여기게 된 것도 서울로 떠나왔기에 가능했다.

너는 항상 불평만 하면서 막상 그곳을 떠나면 그리워하더라.

어차피 떠나면 그리워할 거, 지금 불평을 그만하고 그곳을 좋아해 보는 거야! 하고 어머니께 늘 한소리 듣지만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으로 안다고 해도 마음이 따라와야 하니까. 


그리운 곳이 있기에 낯선 곳을 버틴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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