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지 않고 살아가는 이야기(2)

호미를 던지고 도망치는 이야기.

by chul

나는 버티지 않는 사람이다.


무리하고 열심히는 하지만 버티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에겐 7번 넘어졌는데 8번 일어나게 해 주는 것이 힘이라면 나에겐 2번 정도 넘어지고 야 이거 안 되겠다 더럽게 아프다 하고 침 한번 뱉고 뒤돌아가게 해 주는 것이 힘이다. 도망가는 힘이다. 도망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그 어떤 문제도 그렇게까지 중대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전 글의 나의 이야기를 듣고 힘이 되어준 사람들의 말을 적어보고자 한다. (https://brunch.co.kr/@ruddb1155/196)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는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고 싶어서.


1. "너에겐 자식인 너만 있지 않아. 친구인 네가 있고, 후배인 네가 있고 누군가의 동료/선배인 네가 있고. 너는 앞으로 더 많아질 거니까. 그중 하나인 네가 없어졌다고 네 전부가 없어져야 하는 건 아니야"


전 글에도 적은, 친구 1에게 들은 말이다. 더 이상 가족의 기이한 연극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나는, 자식으로의 내가 죽었다는 것을, 부모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 과정이 너무 아팠고, 꼭 그래야만 했을까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런 나에게 해 준 말이다.


2."분노해야지. 아버지의 폭력성과 철경 씨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팩트만 봅시다."


가장 힘들 때, 나를 담당하면 상담 선생님이 해 주신 말이다. 나는 당시에, 아버지의 그런 폭력성이 나에게서 보였고, 아버지의 정신 이상 증세를 비슷하게 느끼면서 사실, 언제 어느 타이밍에 아버지가 폭력적인 행동을 왜 보였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같은 증세가 보였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은 유전인가?) 다른 점은 아버지는 가족을 망가트렸고 나는 나를 망가트렸다. 그 얘기를 들은 상담 선생님이 해 주신 말이다. 아버지의 폭력성은 아버지의 약점이다. 내 약점이 아니며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20년 동안 그 피해자였다는 사실?

3."이제 호미를 던져버립시다."

그 밭은 돌밭이에요. 예전에도 돌밭이었어요. 땡볕에서 계속 돌밭을 메꾸는 건 이제 그만합시다. 호미를 던지고 그늘로 갑시다. 그늘에서 쉬고 있어도 그 밭은 여전히 돌밭일 거예요.


내가 다니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들은 말이다. 도망을 결심할 수 있게 도와준 말이다.

4."과거에서 도망쳐서, 현재를 살아갑니다. 현재를 더 소중히 하고 현재의 힘이 더 커지고 거기에 더 집중하면서 살다 보면 강해 질 것이고, 그러면 과거는 작아져있을 것입니다. 내가 충분히 강해졌을 때, 그리고 과거가 내 발목을 잡지 않을 정도로 약해졌을 때. 그때 마주해도 됩니다."


5.(그리고 2번의 말을 나에게서 전해 들은 친구 1의 말 )"평생 안 마주해도 돼!"


2번은 1번 말을 해 주신 의사 선생님이 최근에 다시 해준 말이다. 듣고 싶었던 말이다.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도망치라고. 어차피 과거와 우울에 남아서 맞서 싸워밨자 이길 수 없다고. 과거와 우울, 조증 등은 병이고 망상이고 그리고 얼마든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맞서 싸우려고 했다. 뭐든지 잘 안되더라도 최선을 다 하는 척이라도 해야 그나마 동정표라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살아본 사람은 잘 안다. 그놈의 칠전팔기.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해내야 하는 것. 나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설령 그 전쟁에서 지더라도 맞서 싸웠다는 상처가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 상처를 영광스러워하리라.


........ 가 아니다.


이미 생긴 상처는 어쩔 수 없다만, 상처는 가능하면 없는 편이 좋다. 그리고 상처를 영광스러워하는 건 좋지만, 계속 영광스러워할 시간에 상처는 올바른 약을 발라주고 붕대도 감아줘야 한다.

만약 나의 친구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어야만 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그놈의 이해를 버릴 것이다. 차라리 나와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게 낫다. 뭐하러 다칠 것인가.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도망치기로 했다.


이해를 그만두고, 이해 받음도 그만두고 그러나 다가오는 감정은 그대로 느끼고 힘들어하고 우울해하고 그러면서 눈 앞의 맛있는 밥을 먹고 감탄하고, 또 별생각 없이 공부를 하고 내 눈 앞의 사람에게 집중한다. 그저 현재 나 자신에게 집중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모두 느낀다. 절망한다. 힘들어한다. 쉰다. 좀 괜찮으면 다시 깔짝거리며 할 일을 한다. 뽈뽈거리면서 돌아다닌다. 슬퍼한다. 웃는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쳐서 현재에 있는 그대로 부딪힌다. 그러나 버티진 않는다. 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나는 무리하지 않고 긴장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도망치기로 했다.


이 힘은 나를 도망치게 해 주었다. 이 힘 덕에 나는 그 뭣 같은 인생에서도 살아왔고, 상식을 버리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지금은 이런저런 핑계로 하루하루를 연장할 뿐이지만 언젠가 예전에 그래 왔듯이 무리 없이 나 자신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감을 믿는다.



오랜만에 집에 갔을 때, 나와의 얘기 때문인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상을 따로 차렸다. 익숙한 광경이다. 친할아버지가 항상 그렇게 작은 상에 따로 밥을 드셨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그저, 왜 할아버지는 따로 드시지? 외롭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따로 밥을 먹을 때,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였는지 알게 되었다. 상을 자식과 따로 차리는 것. 그건 힘이 없고 의지도 없는 아내의 최후의 발악이었다.


나는 따돌리는 쪽보단 따돌려지는 쪽이 편해서 그다음부터는 내가 그 작은 상에 먹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머니든 동생이든 내 쪽에 있었다. 과일을 주든, 간식을 주든 간에 말이다. 이 의아한 일을 의사 선생님께 얘기하자,

"그게 철경 씨의 힘이자 입지입니다."

이 힘은 자주 언급되었다. 친구들에게도, 심리상담 선생님들에게도, 그리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도. 한 친구는 "길을 걷는데 인도인데 뒤에서 트럭이 오는 기분이 들잖아? 그래서 돌아보면 너야. 근데 그거... 야채트럭이야(속삭)"이라고 표현했다. 위협은 되는데 위압감보다는 재수 없는 분위기를 준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아버지는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당신과 닮은 첫째. 얼굴도, 성격도, 그리고 당신과 같은 아버지를 가진 내가, 아무리 봐도 당신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지 않아서. 살아갈 것 같지 않아서. 아내와 둘째와 달리, 삶 그 자체로 당신의 폭력을 증명해서. 부정하지 않아서.


어쨌거나 성격처럼 주어진 이 힘. 이 힘으로 나는 있는 힘껏 도망칠 것이다. 그리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급식이 맛없으면 뒤에서 쫒아오던 선생님께 "하하! 내일 뵐게요!"하고 친구와 담을 넘었던 그때처럼. 그리고 다음날 평온한 얼굴로 학교로 와서 선생님이 헛웃음을 짓게 만들었던 그때의 나처럼. 나는 언제든지 담을 넘을 것이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크게 소리치며 뛰어다니겠지. "하하! 싫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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